‘기존의 변강쇠는 잊어라.’
우리나라 남성에게 변강쇠는 남다르다. 정력의 화신으로 불리며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변 선생은 한국 남성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변강쇠는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인물은 아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판소리 ‘가루지기전’에 등장하는 변강쇠는 ‘강한 남자’ ‘힘의 상징’을 대표하면서 200년가량 그 명성을 조선 반도에 떨쳤다.
그래서 변강쇠는 영화에도 단골 소재로 쓰였다. 이른바 토속 판타지물이라고 불리는 1980년대 B급 에로 비디오에서 변강쇠는 슈퍼맨 이상의 인기를 누리며 최고 대우를 받았다. 이 중 1986년 엄종선이 연출한 ‘변강쇠’와 고우영 감독의 ‘가루지기’는 변강쇠 영화의 결정판이라고 불리는 명작 중의 명작. 특히 이 두 작품은 남자 고등학생 사이에서 여자를 유혹하는 각종 비기(秘技)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엄마 몰래 보는 비디오 1순위’로 등극하기도 했다는 후문. 이후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등 유사 에로물이 양산되기는 했지만 변강쇠만큼의 충격파를 가진 작품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토속 에로물 전문가의 중론이다.
변강쇠가 다시 돌아왔다. 22년 만이다. 하지만 과거 그대로는 아니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가루지기’(신한솔 감독, 봉태규, 김신아 주연)는 ‘변강쇠 영화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떡장수 청년 강쇠(봉태규)는 어릴 때 사고로 남성 구실을 못하게 되면서 마을 아낙네들의 놀림거리로 살아간다. 그러던 강쇠의 굴욕인생에 일대 최대 사건이 생긴다. 우연히 만난 음양통달 도사에게 비책을 전해 듣고 양기가 가득 차다 못해 넘치는 정력을 주체할 수 없는 남자 중 남자로 변모한 것. 졸지에 마을 최고 완소남으로 변신한 강쇠. 그의 집 앞에는 그와의 만남을 원하며 온갖 산해진미를 싸들고 줄을 선 아낙네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세월에 따라 힘이 약해지면 변강쇠일 수 없는 법. 가루지기의 강쇠도 파워에서는 선배 이대근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다.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방수(?)는 산불을 끌 만큼 힘차고 100근이 넘는 철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능력은 가히 청출어람이다. 특히, 곰과의 합궁까지 감행하는 그의 테크닉에는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다.
변강쇠의 업그레이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한솔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 스스로 에로 애호가라고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과거 영화에 대한 오마주(존경)와 함께 선배들이 못다 했던 고전 비틀기가 숨겨져 있다. 먼저, 강쇠의 내면 묘사다. 강한 외피에 숨겨진 변강쇠의 속살은 더욱 말랑말랑하다. 하얀 피부와 아담한 체격의 봉태규가 연기하는 강쇠는 극중 자신의 힘을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슈퍼 히어로적인 면모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파로 완전히 리뉴얼됐다.
고전 비틀기는 가루지기를 최고의 오락 영화로 만드는 데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쾌도 홍길동’ 등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이미 있었지만 이 영화는 음악, 소품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퓨전사극의 묘미를 더욱 가중시킨다. ‘노동요’ 등 기존의 판소리는 70명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새롭게 각색됐고 등장인물의 의상 또한 보다 노골적으로 변모됐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패션 잡지들을 모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섹시 의상을 집중 분석하고 젊음의 거리 홍대 패션을 참조, 아슬아슬한 가슴선과 다리를 강조하는 파격적인 한복을 만들어냈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