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8시25분. 부산항 3부두를 떠난 배는 약 50분 뒤 바다 위 육중한 구조물 앞에 맞딱뜨렸다.
우리나라 최초이면서 지금도 유일한 석유시추선 ‘두성호’. 부산항 약 11마일(17.6㎞) 밖에 정박한 채 러시아 서캄차카 시추를 위해 떠날 채비가 한창이다. 원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24살을 먹은 두성호의 몸값도 뛰었다. 서캄차카 시추작업에서 받는 두성호의 하루 일당(용선료)은 무려 40만달러 이른다. 얼마 전까지 미얀마에서 시추 작업을 하면서 받은 23만달러의 배에 가깝다.
◇3000억달러를 향한 도전=두성호가 오는 10일에 부산을 출발해 6월 1일부터 5개월간 시추 작업에 들어갈 서캄차카는 3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야말로 금맥이다. 러시아 캄차트네프트가즈가 운영하며, 우리나라도 40%의 지분(석유공사 20%+민간 20%)이 있다. 1배럴당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전체 3000억달러 규모중 1200억달러를 챙길 수 있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슈카노프, 크루트고로프에 각각 두 개의 공(구멍)을 뚫을 두성호는 말레이시아 시추 작업 때 세계적 기업 쉘사가 붙여준 별명처럼 ‘럭키리그(행운의 시추선)’가 서참차카에서 현실로 입증되길 꿈꾼다.
◇고가 장비로 이뤄진 인공섬=‘고가’의 작업을 해야하는 만큼, 두성호에는 수백만 달러 값어치가 나가는 고가의 장비가 즐비하다. 선내 최고가 장비는 시추작업 중 분출되는 가스 또는 분쇄된 암편들과 윤활액(머드)이 섞여 올라올 때 폭발을 방지해주는 장치(BOP)다. BOP는 두성호를 건조할 당시 가격(542억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1000만달러를 호가한다.
또 하나의 핵심 설비인 TDS(Top Drive System)는 선체 내 중심에서 시추봉을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조절하는 콘트롤박스와 함께 두성호의 심장부인 셈이다. 지난 95년 노르웨이로부터 도입할 때 당시 가격이 200만달러 였다. 이밖에 1580㎾급 엔진이 4대나 돌고 있고, 시추시 4각형인 선체를 각각의 각에서 2개씩 고정시켜주는 8개 앵커(닻)는 1개의 가격이 무려 1억7000만원(17만 달러)에 이른다.
◇앞으로 10년은 더 활약=‘두성호’는 지난 24년 동안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102개 공을 뚫어 왔다. 지난 94년 한국석유시추주식회사가 한국석유공사로 합병될 때까지 적자투성이던 것이 지난해 매출 500억원에 순이익만 300억원을 올리는 ‘효자’로 변신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선체 노후화를 지속적인 장비 도입과 시스템 개선으로 극복했다. 이 덕분에 세계 최초로 1년 365일 연속 조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6일 두성호 현장을 방문해 서캄차카 대장정에 나서는 승무원을 격려하고 앞으로 10년 이상 두성호가 활약상을 이어갈 것을 기원할 예정이다.
◇제2의 두성호 추진=이르면 3년내 두성호의 짝이 생긴다. 부범석 한국석유공사 개발운영본부장(상임이사)은 5일 “외국 대형 업체와 6억5000만달러에서 7억달러 규모의 드릴 쉽 시추선 합작에 대한 의향서(MOU)를 교환했으며, 오는 7월말까지 최종 계약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 본부장은 “본 계약을 체결하면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 빠르면 3년내 진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지난 84년 건조해 현역 활동 중인 반잠수식 시추선 두성호에 이어 오는 2011년 경에는 제 2호 시추선을 보유하게 된다. 두성호가 최대 수심 450m 지역 내에만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새 시추선은 수심 2000∼3000m 지역까지 작업한다.
자체적으로 이동할 수 있어 시추 경쟁이 벌어진 극지·심해 지역도 망라할 수 있다.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새로운 드릴 쉽이 건조되면 우리가 이미 확보한 나이지리아 시추 프로젝트와 동해안 8광구(6-1연결 광구)에 대한 프로젝트 임무를 우선 맡길 계획이다.
두성호 선상(부산)=이진호기자 jholee@
<표> 두성호는
구분/ 내용
건조연도/ 1984년(대우조선)
건조가격/ 542억원
선형/ 반잠수식
작업가능 수심/ 30∼450m
최대 굴착능력/ 7500m(2만5000ft)
적재능력/ 4000톤
승선가능 인원/ 10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