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했죠. 영업과 비즈니스를 위해 마시던 와인으로 사업을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구덕모 와인앤프렌즈 사장은 전 LG필립스LCD 부사장 퇴임 후 강남에 아담한 와인바를 차렸다.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 만나온 많은 바이어가 와인바를 해보라는 권유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구 사장의 와인 사랑은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
누구나 가까운 친구들과 조용히 앉아 담소를 나눌 아담한 아지트를 꿈꾼다. 구 사장 역시 그랬다.
“반도체나 LCD 등 IT업계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 수 있는 편한 와인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꿈을 이뤄가고 있죠. 인테리어도 제가 꿈꾸던 스타일로 뉴욕 분위기로 했어요.”
30여년간 몸담았던 IT업계와 와인 비즈니스가 어떻게 다른지 묻자 그는 명료한 답을 내놨다.
“기술의 변화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살았던 ‘패스트 라이프(fast life)’를 접고 이제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살고 있죠. IT는 빠르지 않으면 도태되지만 와인은 느림의 미학이 있죠.”
구 사장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는 IT인에게 와인은 잠시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쉼터라고 설명했다.
“와인은 어떤 술보다 천천히 마시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고 사랑을 끌어내는 술이죠.”
그는 와인이 비즈니스의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며 와인 예찬론을 펼쳤다.
그가 와인을 처음 접한 건 1970년대 뉴욕 주재원시절 당시 빅 바이어에게서 와인의 기본을 배웠다. 당시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각종 와인 서적을 읽고 익혔던 그였는데 그것을 통해 고객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그는 전 LG필립스LCD 부사장 시절에도 모든 영업 자리에 와인을 빼놓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온 바이어도 와인과 함께 이야기를 풀면 업무는 물론이고 개인적 친분까지 쌓게 됐다고 전했다.
“한번은 중요한 CEO를 제주도로 초청했고 횟집에서 식사를 했죠. 그 사장은 59년생이었는데 마침 해당연도의 프랑스 와인이 아주 좋은 것으로 유명했죠. 어렵게 구해 대접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죠.”
그는 와인에 얽힌 비즈니스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그런 그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을 즐겨한다. 인터뷰한 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앙토넹 로데가 생산한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를 추천했다.
샹볼 뮈지니를 한 모금 음미한 구 사장은 “상큼한 신맛이 침샘을 자극하는데 마치 첫키스의 감정처럼 황홀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와인을 마실 땐 잔을 들고 상대방과 눈을 맞추라며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비즈니스 매너가 된다고 조언했다.
김인순기자 insoon@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
구덕모 사장의 추천와인
와인: 샹볼 뮈지니
빈티지: 2002년
생산국 및 지역: 프랑스 부르고뉴
종류: 레드(red)
포도품종:피노누아 100%
김인순기자 in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