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것보다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그동안 수사기관의 단속으로 간간이 드러난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의 불법성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전자신문 탐사보도팀은 지난 두 달간 전·현직 파일 공유 서비스 업계 관계자, 이들과 계약을 맺고 활동했던 사람들을 만나 불법 복제물로 얽힌 파일 공유 서비스 산업의 실상을 파헤쳤다.
◇파일 공유 서비스의 사업 구조 = 웹하드와 P2P 같은 파일 공유 업체들은 회원들로부터 받는 이용료로 운영된다. 요금은 회원이 파일을 다운로드할 때 과금되는데 요금 체계는 크게 정액제와 종량제 두 가지로 나뉜다. 정액제 상품은 용량 제한 없이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으로 월 1만5000∼1만8000원을 내면 쓸 수 있다. 종량제 요금은 보통 10MB당 1원이다. 한 회원이 700MB 파일을 다운로드한다고 가정할 때 업체는 70원의 매출을 올린다.
처음 파일 공유 서비스의 출발은 특정 파일을 개인 또는 하나의 집단이 쉽게 저장하고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웹하드)’과 ‘경로(P2P)’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요금을 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웹하드 서비스는 저장 공간을 빌려 쓰는 ‘임차’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P2P처럼 특정 파일을 빠른 속도로 쉽게 다운로드하게 해 이용료를 징수하는 쪽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변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들이 매출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다운로드 횟수와 양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운로드할 만한, 즉 인기 있는 파일이 풍부해야 하고 동시에 이용자가 많아야 하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불법의 고리가 시작된다.
◇불법 복제물이 매매되는 산업 = “다운로드를 유도할 수 있는 파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음란물·영화·음악·프로그램(SW) 등이죠. 이런 자료는 누가 가지고 있겠습니까. DVD나 CD를 직접 복제할 수 있는 사람들, 국내외서 자료를 빠르고 많이 구하는 사람들이겠죠. 릴리즈 그룹, 회원이 많은 대형 클럽, 이들을 고용하는 겁니다.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하면서.”
현직 웹하드 업체 관계자 A씨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들이 불법 복제물을 제작, 유통하는 사람들과 결탁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릴그룹이란 무엇일까.
‘릴리즈 그룹(release group)’의 약칭인 릴그룹은 영화·음악·프로그램 등이 DVD나 CD 형태로 발매됐을 때 이를 디지털 파일로 복제해 배포하는 사람들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PC와 네트워크에 관해 상당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속칭 ‘어둠의 경로’라고 불리는 FTP(File Transfer Protocol) 서버를 통해 파일을 주고받는데 국내 릴그룹은 유명한 곳이 8개, 신생 조직은 20∼30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이 영입 대상이 되는 건 불법 복제물에 대한 제작 및 수급 능력에 있다. 릴그룹들은 DVD가 발매되면 어떤 보호 장치도 무력화해 원본 소스를 추출해 낸다. 이렇게 추출한 데이터는 인터넷으로 유통되기 쉬운 파일로 만들어 내는데 이 모든 작업이 24시간 내에 이뤄진다. 하루 만에 복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릴그룹들은 또 네트워크 상에서 활동하다보니 미국·일본·대만 등지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릴그룹으로 하여금 누구보다 많은 복제물을 구할 수 있게 한다.
한 릴그룹 관계자는 “일본에서 하루 동안 발매되는 성인물이 20여편 되는데 이 모두를 24∼48시간 이내 가져올 수 있다”며 “국내 음란물 유통의 대부라는 평을 들었던 김씨, 외부에서는 ‘김본좌’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사실 이쪽 세계에서는 하수에 불과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대형 클럽들도 릴그룹이 영입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클럽은 회원이 수십만명 몰려 있고 회원들이 퍼다 나르는 양이 거대해 업체의 영입 대상이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래 조건들 = 대상이 정해지면 작업은 은밀히 추진된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화를 주로 이용하며 관련 내용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하는 수준에서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계약금은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관계자들의 증언과 제보, 물증 등을 종합하면 유명 릴그룹은 불법 복제물을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려주는 대가로 1000만원부터 5억원까지 받는다. 또 회원들이 받는 다운로드 횟수, 즉 실적에 따라 추가되는 ‘수당’도 있다. 대형 클럽은 클럽 회원들이 결제하는 금액의 20∼30%를 챙긴다. B라는 클럽의 회원들이 C사의 서비스를 쓰면서 한 달간 결제한 금액이 총 1억원이라면 C사는 B클럽에 2000만∼3000만원을 준다. 회원을 관리해 주는 대가다. 하지만 돈은 클럽 회원들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운영자 또는 소수의 운영진만이 수익을 나눈다.
거래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지급되며 사이버 머니의 일종인 포인트로 지급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포인트 역시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하다. 또 다른 릴그룹 관계자는 “한 클럽은 월 수입이 가장 적었을 때가 3000만원이었다”며 “운영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억대 연봉자가 된다. 이것도 수입이 가장 적었을 때가 이렇다”고 말했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이는 가능한 일이다. 클럽은 인터넷 카페 같은 커뮤니티다. 네티즌 사이에 입 소문이 난 클럽들은 회원이 수십만명에 이르며, 국내에서 가장 큰 곳은 회원이 5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클럽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50만명의 회원 중 10%만이 월 1만원짜리 정액제를 이용한다 가정해도 업체는 무려 5억원이란 매출이 생긴다. 클럽 운영자가 갖는 금액은 20%, 즉 1억원이다. 업체는 수익을 나누더라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불법이 성공한 모델(?), 죄의식을 둔감케 하다 = 2008년 현재 P2P·웹하드 등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 수는 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기업이 불법 복제물을 실질적으로 유통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불법 복제물로 얽힌 공급책과 유통책의 관계는 국내 파일 공유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처럼 굳어져 범죄에 대한 인식을 무감각하게 하고 또 다른 범법 행위를 유발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웹하드 업체 박모 대표는 “음란물은 웹하드 매출의 약 70%를 차지한다. 그런데 경찰의 단속에 걸려도 음란물을 하나 있든 100개가 있든 똑같이 벌금 500만원이다. 어떤 업체가 음란물을 법을 지키겠다고 열심히 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음란물이든 저작물이든 이를 제공하는 사람이 누구든 개의치 않고 일단 복제물을 유통시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다 알기 때문에 강심장만 있으면 적지 않은 돈을 만질 수 있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업체만이 아니었다. 취재 중 만난 회사원 신모씨도 불법 복제물을 빨리 구할 수만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릴그룹에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저작권 단체 관계자는 “업체와 계약한 사람이나 아르바이트생 등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형사 고소를 했을 때 해당 업체에서 비호를 해서인지 인적 사항이 나오지 않아 고소를 취하한 경험이 있다”며 “우리가 깊은 이면까지 파헤치기에는 어려워 일단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개인을 상대로라도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둠의 산업은 틈새를 이용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릴그룹과 대형 클럽들이 자신들의 높아진 ‘몸값’을 이용해 단순한 계약 관계를 넘어 지분 참여 형식으로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한 릴그룹 관계자는 “어차피 파일 공유 쪽으로는 전문가들이니까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직접 하자는 것”이라며 “투자자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사업 자금을 끌어 오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김종윤·김원석·윤건일기자 t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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