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간 영역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IT와 BT는 상호 융합, u헬스케어·바이오 칩·감성 로봇 등 새로운 산업군을 만들고 보건 의료 서비스 산업 전반에 걸쳐 대변혁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T·BT 융합은 기업의 가치창조경영의 전위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선진 복지 사회에 진입할수록 IT·BT의 결합은 상품 가치를 극대화, 기업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21세기 의학은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보 의학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서정선 서울대 교수는 “초고속 게놈 분석과 대용량 정보 분석을 접목한 포스트 게놈 산업이 바이오 보건 의료산업의 핵심으로 부각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향후 게놈 정보는 헬스케어 서비스에 필수적으로 이용되고 염기서열 분석 서비스 외에도 이를 위한 시약·기계·정보처리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의 동반 발전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IT·BT 융합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생물에서 유래된 효소, 단백질, DNA, 항체 등의 유기물을 기판에 조합한 바이오칩이다. 바이오칩은 DNA 등 원재료의 준비는 물론이고 배열·분석 등에 모든 생물학적 지식과 전자공학, 반도체 등의 IT 기반 기술이 접목된 대표적 융합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LG 등의 대기업, 마크로젠·바이오메드랩 등의 벤처기업, ETRI, 생명공학연구원, KAIST, 서울대, 포항공대 등에서 바이오칩 기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모토로라·에질런트테크놀로지 등 IT기업도 바이오칩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모토로라는 98년 설립한 모토로라바이오칩 시스템스를 중심으로 바이오칩 시장에 진출했으며 에질런트테크놀로지는 랩온어칩(Lab-on-a-chip)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다. 후지제록스도 생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반응과 정보전달 과정을 본떠 살아 있는 세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공세포를 연구 중이다.
최근에는 일본 기업의 진출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저가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바이오칩의 거대 시장 형성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바이오칩은 자궁경부암(HPV) 등 질병의 진단에 활용, 발병 후 질병 관리 서비스에 활용되고 있지만 향후 질병 예방 진단에 활용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백선영 식품의약품안전청 생물진단의약품과 연구관은 “바이오 기업들이 기존 감염 여부를 파악하는 제품 수준에서 암 등의 질병에 거리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미리 진단하고 파악하는 바이오칩 개발에 착수, 머지않아 바이오칩은 질병을 사전에 진단하는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IT·BT 융합은 신약 개발 분야에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정제된 단백질 구조를 보며 신약을 신속하게 설계함으로써 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개발비를 줄일 수 있다. 치열한 신약 개발 경쟁에서 한발 앞서 신제품을 개발, 상품 가치를 한층 높이고 제2의 신약 개발을 먼저 진행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IT·BT 융합은 네트워크를 통한 건강관리 시스템인 u헬스 산업을 새롭게 만들었다. 의료용 센서 내지는 진단용 의료기기에 IT가 녹아들어가면서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존 의료 기관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기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이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 IT서비스 기업이 인성정보·비트컴퓨터 등 의료 벤처 기업과 손잡고 진출했다. SKT 등 통신사도 진출했다. 해외에선 인텔, GE 헬스케어, 히타치, 후지쯔, 지멘스 등이 u헬스케어에 진출하고 있다. 박선희 ETRI 부장은 “평균 수명 연장 및 삶의 질 향상으로 건강 관련 관심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소비 지출의 증가가 예상돼 기업들은 이러한 블루 오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IT·BT 융합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소개: IT·BT 융합 현장을 가다>
바이오메드랩(대표 김종원 www.bimelab.com)은 IT·BT 융합 기술을 기반으로 분자유전 진단 시장을 개척하는 바이오칩 기업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지난 1994년 창업 이래로 생명공학 분야의 기술을 개발, 지난 2004년 분자 유전 진단이 가능한 자궁경부암 진단 바이오칩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칩은 자궁경부암의 원인균(Human Papillomavirus)을 신속하게 저렴한 비용으로 유전형 분류가 가능케 하는 제품이다.
바이오메드랩은 현재 차세대 HPV칩 상용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득할 계획이다. 김종원 바이오메드랩 사장은 “기존 HPV칩은 22종류의 원인균을 분류하지만 차세대 HPV칩은 29종류를 분류해 자궁경부암 관련 분자 유전 진단율을 더욱 높였다”고 말했다. 바이오메드랩은 내년 미국 FDA 신청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미국 시장 진출에 앞서 이 회사는 올해 일본·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중견 제약 기업 안국약품과 국내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 영업을 아웃소싱하기로 한 것이다. 김종원 사장은 “벤처기업 특성상 영업망이 취약, 안국 약품과 협력키로 했다”며 “연구개발에만 주력, 21세기 바이오 진단의학 분야에서 선두 기업으로 나선다”고 말했다.
바이오메드랩은 HPV 칩 외에도 장바이러스(Enteric Virus) 진단용 바이오칩, 약제 내성 분석 결핵균 진단용 바이오칩, 성병 진단용(Sexual Transmitted Disease) 바이오칩 등의 개발에도 이미 성공, 상용화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HPV 진단용 바이오칩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수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원 사장은 “향후 국내 벤처 기업의 CEO를 설득해 개별 기업들이 보유한 바이오칩 특허를 상호 공유, 바이오칩 진단 시장을 조기에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연구 인력 12명에 올해 매출 목표 15억원의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하지만 21세기 질병진단 분야에서 블루오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고/IT와 BT 융합 기술의 미래>
박선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부장(shp@etri.re.kr)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 정도로 상승됐으나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OECD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또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질병의 만성화로 사회적인 의료비가 증대되고 있고 국가 재정에도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은 고품질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매우 크지만 의료기기의 시장 점유율은 매우 낮아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건강 장수 국가 구현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융합기술이란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우리의 강한 IT가 BT·나노(NT) 등 첨단 기술과 융합해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인 새로운 개념의 건강의료서비스를 만들어낸다면 승산을 걸 여지가 충분히 있다.
융합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건강의료서비스의 한 예를 들어보자. 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상태가 어떻게 진전되는지 항상 체크하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의 한 예로써 첨단 반도체 기술인 NT 트랜지스터 기술이 있다.
고감도의 NT선을 반도체 기술로 공정하고 실제로 항원항체 반응을 감지할 수 있는 여러 모듈을 패키징한 일체형 바이오센서는 쉽게 환자의 혈액 속에 있는 암 관련 표지자를 정확하게 검출할 수 있다. 이 데이터가 병원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보고가 될 수 있다면 암 재발의 가능성을 조기에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의료서비스 개념이 융합기술의 도입 덕분에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건강관리의 개념이 질병 발생 시 증상 완화 또는 치료의 수동적 개념에서 질병예방, 장수, 체력 증진 등의 능동적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건강에 대한 관심의 고조, 노령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암,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 질환자 증가 등에 따라 능동적이고 예방적인 건강관리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해지고 있다.
이제 건강의료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나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한 범위로도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u헬스케어라는 신산업 분야를 만들어냈다. IT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u헬스케어 산업이 주력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요소 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도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개발된 혈당폰 기반 모바일 당뇨관리 서비스는 시제품 출시 기간에 비해 그 확산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의료기관의 영리행위 금지 등 보수적인 의료 관련 법 규제, 정례화된 표준이 없는 관계로 각각의 휴대폰 모델별로 개별 테스트를 운용해야 적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어려운 점 때문이다.
이 외에도 u헬스케어는 건강복지에 관한 문제인만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융합에 따른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안수민기자 sm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