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50년, 새로운 50년](18) 수출과 국산화 시대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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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산업의 시작, 한국전자제품 수출조합 발족

 1970년대에 들어서며 전자업계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내수시장 선점에 주력하던 전자 업체들은 수출 지상주의 정책을 펼친 정부의 지원과 함께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해외 시찰단 파견에 머무르던 업계의 움직임은 수출 관련단체 결성, 해외 박람회 참가, 세일즈맨 파견 등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다.

 이런 움직임은 1970년 8월 수출입 업무를 지원할 ‘한국전자제품수출조합’의 발족으로 이어진다. 창립 총회에서 한국전자제품수출조합은 “다각적인 수출전략을 일원화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한편 수출 품목을 확대하고 적정한 가격을 추구함으로써(중략) 밖으로 전자산업의 성과를 거양하고 안으로 국가적 지상과제인 수출 증대 기반을 확고히 하고자(중략)”라는 내용의 발족 취지문을 공표해 수출조합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수출조합에는 금성사·대한전선·삼성전자·동양정밀 등 시대를 대표하는 전자업체가 참여했고 초대 이사장은 곽태석 싸니전기 사장이 임명됐다. 수출조합의 발족으로 그동안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과 FIC가 나눠 관장해오던 수출관련 업무가 단일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수출조합은 1973년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전자전(CES)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 1973년 CES에서 수출조합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관 다음으로 큰 12부스(36m×36m) 규모의 한국관을 확보하고 금성사·대한전선·한국마벨 등 15개사의 출품을 성사시켰다. 국산 AM·FM라디오와 흑백TV 수상기 같은 국산 전자 제품이 미국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1970년대 중반. 성장 유망 품목을 찾아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업계는 성장 유망품목이라는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1975년 전자산업의 주요 품목을 보면 반도체 조립 생산이 26%, 흑백TV가 21%, 녹음기가 3%로 앞으로 이들 품목이 계속 성장을 주도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됐다. 1976년 한국무역협회는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ADL에 ‘한국의 전자산업 장기 전망’이라는 용역조사를 의뢰했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유망 품목을 찾기 위해서다.

 조사 결과 가전제품으로는 컬러TV, VCR 등이 유망 품목으로 꼽혔고 산업용 기기로는 전자식 교환기, 컴퓨터 및 주변기기 등 모두 24개 품목이 선정됐다.

 조사 보고서를 밑거름으로 업계에는 성장 유망 품목을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태동했다. 당시에는 컬러TV 방영정책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1978년 가전 3사가 모두 생산체제를 갖췄으며 브라운관 등 부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1977년부터는 전자식 금전등록기, CB트랜시버(무선 라디오)의 생산도 크게 늘었다.

 개발환경을 조성하려는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펼쳐졌다. 한국정밀기기센터(FIC)는 1971년 개최된 제2회 전자전람회에서 ‘신모델경진대회’를 개최해 업계의 새로운 품목 개발을 유도했다. FIC는 1979년부터 이 대회를 ‘신개발 및 신모델 경진대회’로 확대하고 최우수업체에 수여하는 상공부장관상을 대통령상으로 격상시켜 전자업체가 자연스레 기술 개발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수출산업에 닥친 시련

 시련도 있었다. 1973년 세계 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제1차 석유파동이 있었다. 이에 이어 1978년 제2차 석유파동은 세계 경제를 냉각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공시가격을 살펴보면 1차 석유파동 직전인 1972년 원유 가격은 배럴당 1.9달러에서 1973년 3.6달러, 1974년 10.4달러로 폭등했다. 제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9년 원유는 24달러로 또다시 크게 올라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큰 충격을 남겼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는 인플레 압력, 금리 인상 등으로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선진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보호무역주의의 깃발을 내걸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수입량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량이 많았던 흑백·컬러TV, 라디오 등이 대표적인 수입규제 품목으로 떠올랐다.

◆수출산업 얼마나 성장했나

 70년대 수출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초기연도인 1962년에 약 50만달러에 불과하던 수출 규모는 1965년 약 180만달러로 늘었다. 3년이 지난 1968년엔 무려 10배 이상이 성장한 1950만달러, 1970년에는 5500만달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1972년에는 1억4200만달러로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시대를 열었다. 1976년에는 10억3700만달러로 다시 4년 만에 10억달러 수출시대를 맞이했다. 그후 1987년에는 111억달러를 수출해 11년 만에 100억달러 시대를 여는 기염을 토해냈다.

 연대별로 보면 1960년대는 연평균 88.8%의 수출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70년대에는 47.8%, 80년대에는 26.7%씩 성장했다.

 1970년대는 본격적인 산업의 틀을 갖추기 시작해 노동집약적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이 이루어졌다. 수출지역은 미국이 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그 다음이 일본, 홍콩, 서독, 캐나다 등이었다. 수출대상국가는 1971년 40개 국가에서 1976년 85개국, 1978년 106개국으로 늘어나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며 시장을 넓혀갔다.

 수출 주종품목을 보면 1970년에는 집적회로, 개별 반도체, 라디오, 흑백TV, 콘덴서, 녹음기, 브라운관, 저항기 등의 순이었다. 1979년에는 컬러TV와 녹음기의 약진이 돋보인다. 산업화가 진전되고 소비패턴이 변하면서 녹음기, 집적회로, 흑백TV, 개별 반도체, 컬러TV, 브라운관, 콘덴서, 라디오, 저항기 순으로 수출 주종품목이 형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