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광우병 이후 유럽 `소소한` 검역 다한다

[글로벌 리포트]광우병 이후 유럽 `소소한` 검역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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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된 광우병 논란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일찌감치 광우병 파동을 겪은 유럽의 사후 대응 방식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 각국은 광우병 이후 사회 전반의 논의와 연구를 거친 끝에 식품 안전과 위험평가·관리 체계를 혁명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96년 세계 최초로 광우병이 발생해 ‘광우병 원조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영국은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광우병에 안전한 나라가 됐다.

광우병 사태 이전에는 유럽에서도 90년대 중반까지 식품안전이 농수산 분야에서 주로 다뤄져 ‘규제’보다는 ‘농업과 수산업의 진흥’이라는 명분이 종종 우선시됐다. 또,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위험 평가(risk assessment)와, 당국의 집행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업무가 독립기구가 아닌 정부산하 기관에 집중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우병이 발발하자 유럽 각국에서는 실추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식품안전 관리 기관이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과학적 자문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는 곧바로 기존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광우병 사태 직후 블레어 내각이 출범했는데 과거 농수산식품부에서 담당하던 식품안전 업무를 독립 기관인 식품표준청(Food Standards Agency)으로 독립시키고, 농식품분야 진흥 업무와 분리했다. 식품표준청은 공중보건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위험 평가의 엄정 중립을 지킨다는 원칙을 천명하며 불안에 떠는 시민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곧바로 ‘쟁기에서 접시까지’ 로 요약되는 재배, 사육에서 처리, 유통에 이르는 전체 가치사슬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정비에 착수했다.

프랑스는 광우병 이전부터 리스테리아균, 혈액제제오염 등 공중보건 문제로 홍역을 치뤄오다 영국서 광우병이 발생한 지 2년 만인 1998년 식품안전청을 신설했다. 하지만 독일과 달리 프랑스 식품안전청은 보건부와 농업·소비자부 양쪽을 상대하도록 돼 있어 규제와 진흥 정책 사이에서 힘들게 균형을 유지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연립정권에 녹색당이 참여했던 독일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발전적인 식품안전 체계를 갖춘 경우다. 독일 정부는 2001년 기존 연방 농업부를 식품·농업·소비자보호부로 대체하며 정책의 무게중심을 농업 진흥, 보호에서 식품안전으로 옮겨 놓았다. 현재는 한발 더 나아가, 부처 산하에 위험 관리를 전담하는 집행, 규제 기관인 연방식품·소비자보호국과, 전문가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과학기술의 위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연방위험평가기구를 별도로 두고 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2002년 유럽식품안전기구를 설치했다. 유럽식품안전기구는 한 국가에 속한 집행기구가 아니므로 규제조치를 직접 발동하기보다는 위험을 평가하고, 국가별 식품안전기구들 사이에 위험에 관한 평가나 대응에 이견이 있을 때 이것을 적극적 판단을 통해 개입,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나라마다 기준과 대응이 다르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소비자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그 원인과 해결책이 과학적으로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과 대응 수위가 나라마다 다르다. 이런 이유로 광우병은 여전히 과학기술의 문제 영역에 포함돼 있으며, 뒤집어 말하면 광우병 사태 때문에 식품안전과 위험 관리가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됐다.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 광우병 원조 국가가 지금은 광우병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중 하나가 된 역설을 실현할 수 있었다.

동일한 원칙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자면 위험 요소를 최대한 거부하는 것 즉, 광우병 위험국의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이 되겠지만, 피할 수 없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그 위험을 과장도 축소도 없이 정확히 평가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후속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유럽의 사례는 향후 한국이 위험을 관리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브라이튼(영국)=박상욱 박사. 영국 서섹스대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SPRU)Sangwook.Park@sussex.ac.uk>

<표1/광우병 사태 이후 유럽 주요 국가 행정체계 변화>

국가 변화

영국 식품표준청(2000년) 설립. 농수산식품부는 이후 환경식품농촌부(DEFRA)로 개편

독일 식품·농업·소비자보호부(2001) 신설. 연방식품·소비자보호국, 연방위험평가기구 운용

프랑스 식품안전청(1998) 신설

유럽연합 유럽식품안전기구(2002) 신설

<표2>영국의 노력

정책변화 농업 진흥 위주 -> 식품안전·소비자 보호 우선

소비자 신뢰 회복방법 △관련 기구의 독립성·투명성 확보. △전문가의 과학적 자문. △위험평가와 위험관리 업무 분리

<표3>전세계 광우병 발생 분포

국가 인간광우병(vCJD) 환자수 광우병(BSE) 발생 건수

영국 155 182,807

미국 1 1

일본 1 19

네덜란드 1 77

프랑스 11 960

아일랜드 1 1,510

이탈리아 1 150

포르투갈 - 954

스페인 - 538

(자료: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