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물가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고환율 정책을 거둬들이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수출 드라이브를 위해 새 정부가 견지했던 고환율 정책이 오히려 경기침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정부 내 환율인상론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3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된 서민생활안정 태스크포스 회의 모두발언에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서민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정부도 물가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최 차관의 발언은 그동안 기획재정부가 유지해왔던 고환율 정책을 유보하고 당분간 물가안정에 올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최 차관은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환율인상이 필요하다는 시각이었지만 수출 드라이브를 위해 견지했던 고환율 정책이 오히려 서민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 차관은 “최근 유가급등은 과거 오일쇼크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며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화물트럭 운전사와 어민들이 파업까지 하는 등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같은 최 차관의 발언은 고물가의 원인은 고유가라는 변명이지만 고유가를 고물가의 원인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환율이 높아지면 국내 제품의 수출경쟁력도 높아져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고환율→고물가→소비침체→경기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이 급등하는 유가 등 수입원자재에 고환율이라는 기름을 부으면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고물가가 지속되는 한 고환율론자의 입지는 줄어들 것으로 외환시장은 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방증하듯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급반락하면서 1010원대로 떨어지고 있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5.70원 떨어진 1016.90원으로 마감됐다.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여 만에 1010원대로 하락했다. 이날 환율은 0.40원 오른 1023.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1022.80원으로 밀린 뒤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1024.90원으로 상승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환율이 외환정책 변화의 영향으로 급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환 정책에서 매파로 간주되는 최 차관이 고환율 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역내외 참가자들이 달러화 보유분을 속속 처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최 차관의 발언 이후 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며 “외환시장에 정책 변화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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