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를 아우르는 전자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할 혁신 제품이 점차 사라지는 대신에 제품이 범용화하면서 시장 성장세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으며 고수익·고성장을 위한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만드는 게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전자산업 한 가운데 서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이끌고 있는 이윤우 부회장과 남용 부회장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들이 현실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해결책에서는 각자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윤우 부회장=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이윤우 부회장은 취임과 함께 ‘기술 준비 경영’이라는 새로운 모토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삼성을 이끌었던 속도와 효율·관리 중심 경영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는 지론이다.
기술 준비 경영은 한마디로 앞선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기술 주도권을 선점함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기술이 곧 시장을 만들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준다는 의미를 깔고 있다.
‘기술 애착’은 엔지니어CEO 맥을 잇는 이 부회장 이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기술의 삼성, 반도체의 삼성’을 만든 주역이다.
삼성 전직 임원은 “전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산업의 뼈대를 만든 사람이라면 이윤우 부회장은 그 뼈대에다 살을 붙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윤우를 시작으로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기술 총괄 사장, 또 다른 반도체 스타 CEO인 진대제 전 장관 같은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삼성의 기술 인맥을 만들 수 있었다.
신기술로 ‘성공 신화’를 맛본 이윤우 부회장이 기술 경영에 더욱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남용 부회장=남용 부회장은 기술보다는 ‘마케팅’에 방점을 찍고 있다. 남 부회장은 입버릇처럼 글로벌 기업 LG전자를 위해서는 마케팅 중심의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남 부회장은 LG텔레콤 당시 통신 음영 지역을 찾기 위해 등산을 밥 먹듯 하거나, LG전자 부임 후 해외 출장 때마다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 소비자의 요구를 꼬치꼬치 캐물을 정도였다.
조직 운영의 핵심인 인재에서도 남 부회장의 경영론을 확인할 수 있다. 남 부회장은 취임 후 10여명에 가까운 외부 임원을 수혈했는데 이 중 무려 6명이 마케팅 전문가였다. 더모트 보든 부사장(CMO)을 비롯한 최명화·이관섭·이우경·김예정 상무 등이 모두 각 분야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마케팅 드라이븐(marketing driven)’ 경영 철학 역시 남 부회장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남용 부회장은 76년 LG전자 수출과에 입사해 LG기획조정실(86∼97년), LG전자 멀티미디어사업 본부장(97∼98년), LG텔레콤 대표(98∼06년), LG 전략사업담당 사장(06년)을 거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LG 브랜드를 높였다. 이 경험을 통해 마케팅의 중요성을 피부로 실감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