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다 환율급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중소기업과 이를 판매한 은행 간의 책임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소 전자업체인 T사가 C은행이 환 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Knock-In, Knock-Out)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과 약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함에 따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등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김상준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은행이 중소기업에 상품을 판매할 때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는지와 상품설명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는지 등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한 범위 이상으로 급등할 경우 계약금액의 2∼3배 만큼 해당 통화를 사서 팔아야 하는 파생상품으로,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평가손실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가장 많이 가입한 키코는 전체 평가손실 규모가 2조50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공정위 제소는 은행이 키코 상품을 판매하면서 환율 급등시 리스크에 대한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큰 손해를 봤다며 중소기업들이 은행에 집단소송 검토 등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중소기업 120여개 사는 지난 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한 뒤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에 대해 공정위에 제소할 것이며 필요하면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업체들은 총 1453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감독원도 중소기업들이 최근 제기한 15개 키코 관련 민원사항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불완전판매 등 문제점이 발견되면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금감원은 키코가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된 공모 상품이 아닌 사적계약에 따른 상품이기 때문에 금융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했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기업들이 위험부담이 있는 파생상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나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은행에 물어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거세지면서 공정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일반 개인이 아니라 환상품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기업이 상품에 가입했고 계약서가 있는 상황에서 불공정거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