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00년 통신 기업 BT는 다 죽어가는 코끼리였다. 2002년 벤 버와엔 CEO가 취임했을 때, 적자는 200억달러에 달했지만, 관료적인 기업 문화는 위기에 둔감하기만 했다. 그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잘나가는 무선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그는 모두가 박수를 보낼 때 (지난달 31일) 떠났다. 매출과 수익 면에서 모두 애널리스트의 전망치를 뛰어넘었다. ‘초고속 인터넷 강국’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던 BT 인터넷 서비스 사업이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젊은 CEO 이안 리빙스턴(43)의 고민은 훨씬 더 깊다. 비용 절감 기조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BT의 연간 매출 성장률은 여전히 1∼2%. 존 딜라니 IDC 연구원은 “리빙스턴이 성공하려면, BT는 (성숙 시장인) 통신에 덜 의존적으로 변신해야 한다. BT는 여전히 다음 10년으로 갈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리빙스턴 CEO 스스로 말하는 단 하나의 기회는 ‘홈엔터테인먼트’다. TV와 영화를 가정으로 배달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가 성공하면, BT는 광케이블 구축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비즈니스위크는 그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낡은 규제를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BT가 통신을 독점하는 시절에 만들어졌던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 경쟁자한테도 무조건 망을 개방해야 하는 의무 등이 대표적인 규제다.
“규제를 해제해 달라. 과감히 투자하겠다”며 리빙스턴 CEO도 영국 규제 기관 오프콤(Ofcom)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리빙스턴 CEO는 아더 앤더슨 컨설턴트 출신으로 벤처캐피털, 뱅크오브아메리카, 딕슨그룹 등에서 재무 관련 경력을 쌓았다. BT에 합류한 것은 6년 전. 그가 재무에서 영업으로 타이틀을 바꿔 진두지휘했던 유통 사업부는 영업 이익률 두 자릿수 감소에서 두 자릿수 증가로 돌아섰다.
“지금 BT에서 중요한 것은 ‘민첩성’이다. 비용 절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리빙스턴 CEO의 취임 일성이다.
류현정기자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