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유가대책의 일환으로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를 폐지하겠다고 한데 대해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 소비자단체 등 3자 간에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폴사인제는 주유소가 SK에너지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내걸고 해당 정유사의 석유제품만을 판매하는 제도로, 주유소에서 파는 제품품질을 해당 정유사가 책임진다는 취지로 1992년 도입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수직계열화돼 있는 석유제품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한다는 방침아래 폴사인제를 폐지하고 정유사-주유소간 배타적 공급계약을 금지하며, 대리점과 정유소간 수평거래를 허용하고 수입 개방폭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석유제품 판매에 관한 부당 표시 및 광고 행위 관련 고시를 폐지하고, 석유사업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면 주유소는 자체 상표나 여러 정유회사의 상표를 내걸면서 서로 다른 정유회사의 제품을 섞어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밉보일 수 있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우려의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소에서 여러 정유사의 기름을 섞어 팔면서 석유제품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지금은 정유사가 제품품질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있지만, 폴사인제가 폐지돼 혼유에 의한 차량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구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유사별로 실시하고 있는 각종 보너스 카드(포인트 제도) 등 주유 할인카드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불가피해 소비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정유업계는 주장한다.
이에 반해 주유소업계는 15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숙원을 풀게 됐다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사적거래와 계약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국가가 전무한 상황에서 폴사인제를 폐지하는 것은 비록 늦었지만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특히 폴사인제 폐지로 과점체제로 굳어져 있는 정유사간 경쟁이 촉발되면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가격도 인하될 것이고 그러면 주유소 판매가격도 자연스럽게 떨어져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가격인하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폴사인제 폐지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입장은 다소 유보적이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파는 석유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보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상표표시제를 폐지하면, 소비자는 어떻게 섞은 기름인지도 모른 채 구입하게 되는 등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폴사인제를 폐지한다고 휘발유 가격이 내려갈 지도 의문”이라며 “차라리 현재 주유소마다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값싼 경품을 먼저 없애는 등 부대비용 거품을 빼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윤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