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굳게 믿었다. 한국산 시리즈물은 성공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신념을 이제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화 ‘강철중:공공의 적 1-1(강우석 감독, 설경구·정재영 주연)’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공공의 적’ 시리즈로 불리는 전작에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전과는 성격이 완전 다른 세련된 영화다. 물론 2001년과 2006년에 개봉한 두 편의 전작이 평균 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당긴 흥행작이지만 이는 사실 강우석 감독의 이름값에 다름아니었다. 하지만 오는 19일 개봉하는 강철중은 이제 공공의 적 시리즈가 강 감독의 이름을 떼고도 강철중의 네임 밸류만으로 생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강철중’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이전 작품의 그것을 그대로 따른다. 강동서 강력반 형사 강철중(설경구)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다니지만 15년차 형사 생활에 남은 거라곤 달랑 전셋집 한 칸뿐이다.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도 여의치 않다. 힘든 형사 생활에 넌더리가 난 그는 급기야 사표를 제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한 고등학교에서 터진 살인사건 때문에 사표는 미뤄지고 이번 사건만 해결하면 퇴직금을 주겠다는 엄 반장(강신일)의 회유에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사건을 파헤치던 중 살인사건 뒤에 ‘거성’이라는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안 강철중은 이 그룹의 회장인 이원술(정재영)을 의심한다. 이원술은 겉으로는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엘리트 사업가지만 뒤에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공공의 적. 이제 강철중과 이원술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된다.
장르물의 성공은 도(刀)에 비유된다. 무딘 쪽을 잡을 땐 아무 상처 없이 전쟁에서 승리(대박)할 수 있지만 혹여 시퍼런 날에 손이 닿으면 치명적인 외상(쪽박)을 입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모를 강우석이 아니다. 그는 자칫 식상함으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날(공공의 적)을 잡는 듯 했지만 ‘강철중’이라는 막강한 한국산 영웅을 창조해 칼날을 관객에게 들이댄다.
이 영화의 제목이 공공의 적이 아닌 강철중이라는 사실은 칼날이 이미 강우석 자신이 아닌 우리를 향해 있다는 것을 예견한 것이었다. 관객을 일합에 제압할 그의 필살기는 바로 강철중을 지킬 박사가 아닌 우리 심중에 있는 하이드로 만드는 것.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경찰서) 빠지기를 밥먹듯이 하고 손 봐줄 사람은 찾아가서라도 때리는 그의 집요함에서 우리는 심적 기저에 녹아 있는 사적 복수심을 대리 만족한다.
강철중의 사적 복수심에 관객이 더욱 열광하는 이유는 싸움에 대한 그의 공정한 룰 때문이다. 남들을 제압할 수 있는 공권력을 지녔지만 공공의 적에 맞서는 장면에선 항상 맨주먹이다. 한 명을 두 명 이상이 때리는 일 없고 상대가 항복하면 싸움을 멈춘다. 이원술과 맞서는 마지막 장면은 강철중의 철학이 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밀항을 계획한 이원술은 인천 포구에서 강철중을 만나고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싸움에 밀리던 이원술은 철중이 옆구리에 칼을 맞은 것을 알고 그 부위를 집중 공략한다. 참다 못한 철중은 총을 빼 들고 그를 제압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닌 옆구리를 쏜다. 그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공평하지? 제대로 해 보자.’ 룰을 아는 사적 영웅, 네 번째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