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SW코리아/캡티브 시장 열어 규모와 실력을 키우자

 국내 모 전문 IT서비스 기업은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대형 ERP 컨설팅 및 구축 계약을 수주했다. 하지만 그 컨설팅 기업은 대기업과 직접 계약을 하지 못하고 대기업의 IT서비스 계열사를 거쳐 공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물론 그 내용은 외부에 알리지 않는 조건이다. 결국 대기업의 IT 계열사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적지 않은 매출과 일정 수익을 얻은 셈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들이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하는 분야는 IT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기준으로 세계 100대 IT서비스 기업 가운데 국내 기업은 삼성SDS가 52위, LG CNS가 60위, SK C&C가 90위를 기록했다.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가장 큰 수요처인 대기업집단 상당수가 IT 자회사를 두고 물량을 IT 자회사에 몰아주는 폐쇄적인 캡티브 구조에 기인한다.

 지난해 경제개혁연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43개 기업집단 중 IT 회사가 계열회사로 있는 그룹은 28개로 65%에 달했다.

 이는 숨어있는 IT 자회사는 포함하지 않은 결과로 업계에서는 50개 기업집단 가운데 43개 곳이 IT 관계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적지 않은 IT 자회사가 오너 지분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그룹 물량의 대부분을 계열 IT서비스 기업에 경쟁 없이 지원된다. 경쟁이 없다 보니 기술력 향상이 더디고 그 결과 국내 시장은 나눠 먹기로, 해외 진출은 경쟁력 부족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못내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지난 2000년 IT서비스 시장에 진출, 타 사에 비해 비교적 시장 진출이 늦었던 오토에버시스템즈는 지난해 4180억원의 매출을 기록, 4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특수관계자 매출은 386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93%에 이른다.

 반면에 2000년까지 현대그룹의 유일한 IT 자회사였던 현대정보기술은 지난 2000년 5705억원의 매출을 정점으로 지난해 매출은 2530억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현대그룹이 현대·기아자동차, 현대, 현대중공업 등으로 분리되면서 오토에버시스템즈, 현대유앤아이 등 IT 자회사가 생겨났고 상당규모의 캡티브 매출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한때 빅 5에 속했던 쌍용정보통신, 대우그룹의 IT 자회사였던 대우정보시스템 등도 그룹 해체 등으로 현재는 10위, 11위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결국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의 순위의 상당 부분은 실력과는 큰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기업집단의 규모와 캡티브 물량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인 셈이다.

 이영희 현대정보기술 사장은 “SW산업은 문화, 사회 등이 결합된 3차원 산업이어서 산업 육성이 쉽지 않지만 IT서비스 분야는 자본, 인력, 기술력만 쌓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산업”이라며 “국내 IT서비스 산업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캡티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캡티브 시장의 개방은 저가 수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결국 IT서비스 기업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이고 발주 기업에 비용절감과 더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IT서비스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어 자주 비교되는 분야가 광고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