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맛있는 영화]무림여대생

[한정훈의 맛있는 영화]무림여대생

 ‘4차원, 4춘기, 4고뭉치, 절대 무공 여대생.’

 오는 26일 개봉하는 ‘무림 여대생(곽재용 감독, 신민아·온주완 주연)’의 홍보 문구다. 무림 여대생은 지난 2006년 제작을 시작해 2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신민아라는 아이돌 스타를 주인공으로 했지만 제작비 부족 등 여러 사정이 겹쳐 개봉 시기를 놓쳐 버린 것. 오랜 기다림 탓인지 흥행에 대한 제작진의 바람도 컸다. 실제로 신민아는 기자 간담회에서 “대학생 소녀가 대학원생이 돼서 개봉되는 셈”이라며 “글 좀 잘 써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지난 16일 2시 서울 용산 CGV극장, 무림 여대생이 드디어 세상에 공개됐다. 기자 시사회가 있었던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려 영화를 보러 가기엔 최악의 날씨였지만 평소 한국형 무협 영화에 무한 애정이 있는 나에겐 이런 조건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 시작에 앞서 곽재용 감독을 비롯한 주연 배우가 무대 인사에 나섰다. 중국에서 간담회를 위해 급히 날아왔다는 곽재용 감독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개봉에 대한 설렘이 눈빛에 읽혔고 2년 만에 컴백하는 신민아는 신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실, 그들의 모습보다 나의 마음을 더 끌어당긴 것은 홍보 브로슈어에 담긴 영화 장르 소개였다. ‘캐발랄 로맨틱 액션 코미디.’ 그야말로 1타 4피 아닌가. 타짜도 누리지 못한 승률? 하지만 예단하긴 일렀다. 배신을 한 영화가 한둘이었나. 그래서 나는 영화가 정말 이 네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림 여대생엔 세 가지는 없고 한 가지(액션)는 있었다. 먼저, ‘캐발랄’에 대한 지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공간에 무림의 고수들이 만들어가는 4차원이 함께 존재한다는 설정이 다소 흡입력 있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극적 전개는 제작진이 밝힌 ‘캐발랄’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발랄’이라고 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진부하다. 무림의 4대 장로 중 반탕강기(이건 단순한 차력이다)의 고수 외동딸 소휘(신민아)가 벌이는 행동은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에 다름아니다. 소주를 한 사발 들이켜도, 머리에 망치가 떨어져도 아무 이상이 없는 그녀.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소휘의 특색을 드러낼 만한 내면 연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로맨틱과 코미디 이것도 마찬가지다. 소휘는 4차원 무공을 이어갈 인재로 꼽히지만 대학생이 된 뒤 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에이스 준모(유건)를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랑할 나이가 된만큼 무공 수련보다는 사랑과 결혼을 꿈꾸는 평범한 20대 초반 여성으로의 길을 선택하고 싶어한다. 이쯤에서 관객은 로맨틱 코미디를 상상한다. 그러나 영화는 바로 배신의 칼을 들이댄다. 그녀가 준모를 사랑하는 방식은 로맨틱하거나 혹은 코믹하지 않다. 막말로 하자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지만 적어도 로맨틱 영화라면 갈등이 필수다. 그러나 이 영화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밀고 당기는’ 사람 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 흔한 오해로 인한 불신도 무림 여대생에겐 마이너리티한 요소다. 어릴 때 동고동락했던 일영(온주완)이 둘 간의 사랑을 방해하는 설정이 약간 나타나지만 이것도 정석은 아니다. 일영의 관심은 그녀의 사랑이 아닌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일영은 소휘가 무공 수련을 그만두려는 소휘를 막는 데만 급급하다.

2년 동안 갈고 닦은 액션은 그나마 군계일학이다. 보통의 한국산 액션 영화들이 거칠다면 무림 여대생의 액션은 부드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매트릭스2’ ‘스파이던맨3’ 등의 영화에서 무술 감독을 맡았던 디온 람이 연출한 액션 신은 신민아의 섬세한 움직임을 화면에 담아내기 충분하다. 심지어 신민아의 발차기는 영화 플롯보다 훨씬 돋보인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