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햇살에 지친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 외지 사람을 무심하게 쳐다본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노인들은 낯선 이의 카메라를 거부인지 승락인지 모를 잔잔한 웃음으로 대한다.
아이들이 찻길에서 제멋대로 자전거를 타며 뛰어 노는 곳.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달마산 미황사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다.
미황사를 가기 위해서는 KTX나 고속버스를 타고 나주나 광주 혹은 해남까지 가야 한다. 여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월송 터미널이나 산정 정류소에 내려야 달마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황사에 닿는 길이 시작된다. 걷기에는 먼 거리여서 택시를 찾는 이들이 많지만 가끔 1∼2시간을 터덕터덕 걷기를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제 벼가 여물기 시작한 남도의 벌판과 그림처럼 떠 있는 구름, 길 곳곳에서 발견하는 야생화가 걷는 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미황사(美黃寺)는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꿈에 본 금인이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누운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다 마지막 누운자리에 세운 절이다.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다 해서 따온 말이고, 황(黃)은 금인의 황홀한 금색을 의미한다.
미황사는 해남의 유명한 사찰인 대흥사 못지않은 역사와 유래가 있는 사찰이다. 이 절의 가장 큰 매력은 대웅전에서 바라본 일몰. 주지인 금강 스님이 ‘석양 보시’라 일컫을 만큼 미황사 대웅전의 일몰은 깊고, 강렬하다.
미황사를 찾는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를 꼭 권한다. 미황사의 템플스테이는 대부분의 템플스테이가 사찰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쉼을 위한 머무름을 주는 것이 취지여서 기간에 제약 없이 미리 전화만 하면 체험이 가능하다.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일어나 눈앞에 닿은 까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발견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좀처럼 찾기 어려운 돌고래자리와 플레이아데스도 육안으로 발견 가능하다.
여름철에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산책로를 따라 부도전까지 걷다 보면 야생화에 맺힌 이슬이 스러지는 모습과 새소리, 공기의 변화와 함께 온몸으로 아침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 공양 후 불썬봉까지 이르는 산행은 동양화 같은 풍경 속을 걷는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수운기자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