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CEO]류병훈 EMW안테나 사장

[파워CEO]류병훈 EMW안테나 사장

 일단 열심히 했다. 개발한 제품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몰랐다. 작년 10월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회에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공기양극막’을 가지고 간 류 사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랐다. 2년 전에 개발을 완료한 제품이었지만 바이어들이 털어놓는 개발과정의 문제점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려워도 전체 매출의 15∼17%를 아낌없이 연구개발(R&D)에 쏟아부은 결과다. 류병훈 EMW안테나 사장(50)은 앞으로도 R&D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류 사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돈에는 사용하는 사람과 용도가 적혀 있는 것 같다”고 강조한다.

 ◇가난을 딛고=무척이나 가난했다. 너무 어려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 사이에 6개월 정도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군을 전역하고 회계관련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남의 집 처마 밑 평상에서 며칠을 보낸 적도 있고 중학교 갈 때는 학비도 없어 힘들었다. 엄청나게 내성적인 성격도 문제였다. 국민학교 3, 4학년 때는 신경쇠약으로, 중학교 때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병약하고 내성적인 그런 성격이었다. 학교에서도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책상에만 앉아 있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다 보니 짝하고도 친구가 되지 못했다. 류 사장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는 부자가 된다!”=고등학생이 된 류 사장의 첫 번째 목표는 성격을 바꾸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태권도·검도·농구·축구 등 운동도 많이 하고 대외활동도 많이 했다. 가톨릭학생회(CELL) 활동을 하면서 성격을 많이 바꿨다.

 1, 2학년 때 매일은 아니었지만 집 근처에 있는 관악산을 자주 올랐다. 새벽에 관악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나는 부자가 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적이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가난하고 그러니까, 사실 내가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커서 과학자가 되겠다는 거나 경찰이 되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부자가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사실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도 하고 했지만 학비 사정도 여의치 않아 군에 입대했다.

 ◇초년의 실패=25세가 된 83년 군대를 제대하면서 생각한 것은 사업이었다. 사업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3개월 동안 서울·경기도 일원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비디오·영상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TBC가 문을 닫아 TBC 출신 엔지니어들과 함께 ENG카메라보다 작은 카메라를 한 대 사서 시작했다. 결혼식 촬영과 기업체 홍보물, 기업 내부 교육용 홍보물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비디오·영상 사업이 잘됐지만 욕심이 화를 불렀다. 콘도·기업연수시설 사업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업에 소홀하게 돼 사업이 몰락했다. 있는 장비 없는 장비 모두 정리하고 29세 되던 해에 결혼했다. 결혼을 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 때문이었다.

 ◇‘제조업’의 선택=결혼 이후 안양에 자리를 잡았고 이듬해 큰아들이 태어났다. 이때 류 사장은 제조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시만 해도 비디오·영상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한 번도 돈을 못 벌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이 ‘아버지는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고 물어봤을 때 부동산 투기 같은 것도 하고 투자도 하고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존경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기왕이면 아들한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겠다는 생각에 제조업을 택했다. 국가 기간 산업이면서 열심히 하면 성공하고 설령 안 되더라도 자녀에게 존경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당시만 해도 제조업이 뭔지 몰랐다. 정식 모집공고 기간도 아니었는데 안양에 있는 삼성전자 협력업체에 무조건 이력서 하나 써 들고 찾아갔다. “이력서를 내보이며 ‘전 이런 사람인데 월급 안 줘도 좋으니 3년만 여기에서 배워서 제조업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당시 사장이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앞으로 3년 후에 제조업을 시작할 텐데 그때까지 열심히 해서 최소한 제조업하는 것에 대해 사장님이 절 선택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줄 테니까 절 뽑아달라’고 했습니다.”

 류 사장은 그 회사에서 11개월 보름 동안 외주와 자재 업무를 맡아 일했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배웠다고 생각하고 사장에게 영업을 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 하는 업무를 열심히 해달라는 대답에 그만두게 된다. 이후 통신업체에 다시 들어가 영업 업무 10개월 만에 회사 매출을 5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고 독립해 나왔다.

 ◇시련의 30대=90년에 직장에서 나와 일주일 쉬고 서울 독산동 반지하에 공장을 차렸다. 상아전자라는 개인회사였다. 직원 10명과 함께 20평 남짓한 공장에서 커넥터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하네스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현대전자의 솔로몬컴퓨터의 프린터용으로 납품하기로 했는데 현대전자에서 사업을 접는 바람에 고생길에 들어갔다. 다시 대승전자라는 회사를 차려 국수기와 녹즙기, 원격시동기 사업에 손을 댔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30대에는 왜 그렇게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국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회로 분야를 만들어 중간에 수출하는 업체에 공급했는데 수요는 많고 생산능력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사업성이 좋았다. 그런데 녹즙기 사업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처음 500대를 주문받아 공급했는데 쇳가루 파동 때문에 업체들이 다 도망가고 없어지는 바람에 두 달 만에 사업을 접었다.

 ◇우연히 만난 사업 동반자=“아이들한테 존경받기 위해서 선택했는데 존경받기는커녕 생활비도 못 가져다 줄 바에는 제조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술 먹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땡 하면 집에 들어가기를 며칠 반복하자 아내가 봉투를 내밀며 ‘사업하는 사람이 그래서 되겠냐’며 ‘집을 책임질 테니 친구들 만나서 술이라도 먹고 오라’고 해서 마음을 다 잡고 새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류 사장은 원격시동기에 들어가는 안테나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만 해도 안테나는 아무나 하지 못하는 품목이었다. 주문해도 배달을 안 해주는 배짱장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하면서 서점에서 안테나 관련 책자 몇 권을 사서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안테나를 만들었는데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자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안테나 사업에 나섰다.

 상아전자와 대승전자에서 잇따라 쓴맛을 본 류 사장이 안테나 사업에 빠져들었을 무렵 지금의 연구소장인 성원모씨를 만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연구소장은 대학 2학년 때 이미 하이게인안테나에서 고문으로 영입하려 할 정도로 안테나 업계에선 유명했다. 같이 공부도 하고 일요일엔 연구소장의 강의도 듣고 하다가 의기투합해서 EMW안테나를 설립했다. 법인 설립은 안테나 관련 원천특허를 낸 날인 98년 6월 1일로 정했다.

 EMW안테나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3년 전 연료전지 전문가인 공재경 박사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 한솥밥을 먹고 있다.

 ◇더 큰 10년을 내다보는 포트폴리오를 갖추다=류 사장은 어찌 보면 엉뚱하다.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빠가 되기 위해 제조업을 선택했던 것도 그렇지만 EMW안테나를 설립한 것도 그의 독특한 사고에서 나왔다. “그때 IMF 외환위기가 아니었으면 창업을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엉뚱하지만 누군가 행복하면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반대로 누구나 힘들어하는 IMF위기 때 하면 상대적으로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니 훨씬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든 경우의 수를 30대에 다 경험한 류 사장이었기에 이런 철학도 나왔으리라.

 류 사장은 이달 초 EMW안테나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사업 품목도 기존의 안테나뿐 아니라 에너지, 환경 분야로 확대할 태세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공기양극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양산해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 최근엔 기존 제품에 비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매연저감장치도 개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류 사장은 이제 더 큰 10년을 꿈꾸고 있다.

◆류병훈 사장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비디오·영상 회사와 전자부품 업체를 여럿 경영한 것이 지금의 EMW안테나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사어버대학교를 나온 후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02년에는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EMW안테나를 통해 2003년에 제40회 무역의 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05년과 2006년에는 2000만불 수출의 탑과 납세자의 날 재정경제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내장형 지상파 DMB 안테나를 개발해 업계의 관심을 받았고 작년에는 홍콩법인을 설립하며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문정기자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