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조선, 자동차 등 각 산업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정보통신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융합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글로벌 동향, 시장환경 등 총체적인 환경이 변화하면서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도 이에 발맞춰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전자신문은 지난 24일 저녁 서울 역삼동 삼정관광호텔에서 ‘새 시대의 정보통신 정책’을 주제로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 6월 정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융합기술연구부문장이 주제발표를 맡고 이상진 청와대 방송통신비서관실 행정관, 배희숙 여성벤처협회장(이나루닷컴 대표)의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IT와 산업의 융합이 시대적 대세인만큼 새로운 정보통신 정책 방향이 수립돼야 하고 IT 핵심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환경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 필요=손승원 ETRI 융합기술연구부문장은 “‘융합’은 최근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로 특히 IT 분야에서는 신기술이 확산되면서 IT가 기존 산업에 내재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면서 “이에 따라 정부나 사업자도 이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후속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규제에 얽매여 있었던 기존 정보통신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면으로 탄력적으로 융합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 참석한 변재일 통합민주당 의원은 “옛 정보통신부에서는 규제정책을 사업 육성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오히려 산업 발전을 억압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새로운 정부체제에서는 IT 부문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은 소프트웨어진흥원 소프트웨어공학단장 역시 “IT산업이 융합으로 뻗어나가야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새로 구성된 부처체제에서 여러 기관이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IT 관장하는 컨트롤타워 있어야=여러 산업이 융합되더라도 실제 핵심 기술 개발을 관장할 기관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패널토론자로 나선 배희숙 회장은 “연구개발(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전문 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투자 규모 자체보다 어떤 투자를 통해 실제 상용화로 연결시킬 것인지 혜안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정태명 교수 역시 “여러 가지 산업이 동반 발전하려면 기본적으로 핵심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면서 “IT 핵심 기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만정 팔콘스토어 코리아 대표는 “산업적으로 중요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해 나갈 주무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교체됐지만 IT정책을 일관성 있게 펴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문영성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는 “IT 분야에서 중국 등 경쟁국이 무섭게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하루빨리 새 비전을 수립하고 학계와 산업계 등이 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기존 IT정책을 크게 흔들지 않고 점진적으로 잘못된 점을 수정하고 고쳐나가야 산업에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오재철 아이온 커뮤니케이션 대표와 권석철 유디코스모 대표 등은 오히려 정부 역할이 축소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융합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누가 개척할 것인지 산업계와 정부가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정부가 끌고 나가는 개발 모델보다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융합기술연구부문장
:새로운 정보통신 정책 필요하다
융합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고객 요구 복잡화, 신기술 확산, 산업 간 경계 약화 등의 이유로 융합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융합시대가 도래한 것은 여러 환경 변화 때문이다. 다자주의가 진전되고 자원외교의 중요성 증대, 유비쿼터스 사회로의 진입 등 글로벌 환경 변화가 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 산업은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위기감이 느껴지는 현상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이래 IT산업의 실질부가가치 성장률은 18.0%, 13.3%, 13.6%로 점점 떨어지고 있다. 또 전체 GDP 성장률에서 IT산업의 기여도도 지난 2004년 2.2%포인트에서 지난해에는 1.5%포인트까지 줄어들었다.
여러 수치를 봤을 때 지금이 정책 변화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무엇보다 새 정부에서는 정보통신 정책이 여러 부서에 분담돼 있다. 융합 기반 구축에 관련된 부처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한두 곳이 아니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업무 재조정이 필요하다. 또 국내 IT산업은 산업구조적으로 기기 부문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고 부품 중에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다하다. 또 규제 측면에서도 규제로 인한 비용은 총 78조1000억원에 이르는 등 규제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
현재 IT 분야에서 보이는 산업만을 IT로 인식하면 수많은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산업에 대한 직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IT를 ‘물’에 비유해 정책 방향은 제언하고자 한다. 그동안 IT가 독립적 시스템으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물과 같이 다른 영역에 침투해야 한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도 스스로 존재하는 물의 교훈을 IT정책에 접목해야 한다.
‘IT 워터 프런티어 전략’을 제안한다. IT 부문을 4영역으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신기술 융합화 △Pure IT 고도화를 꾀해야 한다. 신기술 융합화 부문에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융합 신산업을 창출하고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Pure IT 고도화를 위해서는 기초 기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IT인프라를 고도화하고 유망 분야를 발굴하고 도전하려는 의지가 요구된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전산업 내재화 △Pure IT 융합화 전략이 필요하다. 전 산업에 IT를 접목시켜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방통융합 미디어 육성, 시장지향적 규제 정책 등이 필요한 측면이다.
◇이상진 청와대 방송통신비서관실 행정관
;새시대 정보통신정책은 실질적인 정책으로
새 시대의 정보통신 정책은 실질적인 정책이 돼야 한다. 그동안 IT 분야 투자가 많았지만 이것이 과연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에 쓰였는지, 투자 대비 효과가 있었는지 면밀하게 검토해봐야 할 때다. 정부가 나서서 투자를 주도하고 IT업계를 이끄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산업계가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문이 초점이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소프트웨어 시장의 하도급구조나 중소기업의 수요 확보 문제, 또 통신서비스업체와 벤더 간 거래 질서 문제 등이 산업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것들을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공급자로서 자금 지원하고 투자하는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IT 정책 관련 부처가 지경부, 행안부 등으로 다양화된 것을 놓고 산업계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긍정적인 사인으로 봐야 한다.
정보통신부가 산업을 하나로 모아서 토털 밸류 체인을 제공하던 때는 이제 끝났다. GDP 2만달러 시대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서는 융합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기존 산업에 태양광, 그린IT 등 IT를 접목해 새 산업을 발굴할 때가 왔다. 기본적으로 부처 간 업무 획정과 유기적인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배희숙 여성벤처기업협회장
:IT산업의 허리, 중기벤처 육성해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IT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기대했던 중소벤처 업계의 기대가 꺾이고 있다.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나 시스템과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인해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 기업들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초기에 IT정책에 대한 윤곽은 잡혀 있지만 주무 부처의 명확한 생각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중소벤처기업들에는 불안한 요소다. 특히 지난 3월 지식경제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IT융합 및 기술 통합’은 총론 성격의 청사진에 그치고 있다.
실무 IT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에는 통신 및 방송 육성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고 지식경제부는 부품소재 육성방안 외에 신성장 산업의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 행정력과 기획력을 갖춘 실무전문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한 R&D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필요하다. R&D 투자 규모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과제다. 지난 정부는 기초연구에 치중하다 보니 연구 성과가 실제로 상용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성과 지향적 R&D를 강화하기 위해 시장의 정확한 요구를 간파해야 한다.
새 정부는 신기술이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발주처 담당공무원을 전문가로 구성하고 기술 및 동향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정례화해야 한다. 또 테스트베드를 대폭 확장, 제품 안정화를 돕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황지혜기자 go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