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소프트웨어(SW) 발주 사업에서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최저가 낙찰제도가 버젓이 고개를 들고 있어 관련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법령에는 SW사업을 지식개발사업으로 분류해 기술 중심의 협상에 의해 낙찰자를 선정하도록 했지만, 형식적인 기술 평가만 거치거나 아예 물품구매로 분류해 최저가 낙찰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최저가 낙찰이 성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식 산업이 제값을 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제도 보완과 함께 업계에서도 저가 출혈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서울메트로·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전사적자원관리(ERP)와 정보기술아키텍처(ITA·EA) 등의 SW 관련 사업을 발주하면서 실질적인 최저가 낙찰방식을 적용했다.
이들 사업은 1차 제안서에 의한 기술평가와 2차 가격입찰을 거친다고 공시돼 발주에 들어갔으나, 일정 정도의 점수를 받은 사업자들은 모두 기술 평가를 통과하도록 해 점수는 2차 가격 입찰로 결정됐다.
실제로 이들 사업을 제안한 사업자는 모두 1차를 통과하고 2차 가격 입찰을 통해 낙찰자가 선정됐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전기안전공사 ITA 컨설팅 부문은 6억원이 넘는 사업이 4억원에 낙찰돼 출혈수주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예산절감 등으로 공공 부문의 물량이 기근현상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줄어든데다 향후 EA 시장의 본격 개화를 겨냥한 시장 선점을 위해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최저가 방식을 따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음달에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한국석유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의 프로젝트가 대거 발주될 예정이다.
입찰 제도의 허점은 제품 분류방식에서도 나오고 있다.
기술용역 사업이 뒤따르는 SW사업까지 물품구매로 분류해 최저가 방식으로 낙찰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계약 법령에는 단순 물품구매는 적격성 심사를 거치면 최저가 낙찰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한 달 동안에만 조달청 나라장터 사이트에는 SW사업을 물품으로 분류해 최저가 낙찰을 한다는 사업공고가 50건이 넘게 올라왔다.
단순 패키지 SW는 물품구매로 분류할 수 있지만 시스템 구축과 이를 업그레이드하는 고도화사업까지 물품구매로 분류해 최저가 낙찰을 진행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공공기관 표준화가 된 그룹웨어는 물론이고 KM·BPM이나 보안관제서비스까지 물품구매로 처리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 법령이라고 해도 처벌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그나마 제도 자체도 허점이 너무 많다”며 “정부가 최저가 낙찰 관행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계약이 최저가 낙찰”이라고 꼬집었다.
문보경·허정윤기자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