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이력이 통상 외교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달 23일 2008년 외무고시 합격자 발표에서 차석의 영광을 안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신건호(30)씨의 합격 소감이다.
자연계열 불모지에 가까운 외무고시는 특히 공대생에게는 불리하다 것이 통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어와 논술로 진행되는 외무고시는 인문계열 출신자에게 보다 유리하다. 실제, 그간 합격자 통계를 보면 지난 3년 동안 자연계열 합격자 1명을 제외하면 공학도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신건호씨의 합격은 학교에서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사실 신씨는 대학 2학년까지 영문학도였다. 컴퓨터공학과는 3학년때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로 전과한 것. 신씨는 “수학부터 다시 시작해 적응하는 데 힘들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컴퓨터공학과에서 보낸 시간들이 저를 외교관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외교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2년 반 동안 군대 대신 페루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IT부서에 파견요원으로 근무했던 경험 때문이다. 당시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 덕에 컴퓨터 수리같은 소소한 일부터 프로그래밍, 웹사이트 제작 등을 했다. 신씨는 “수출에 매달려 살아가는 페루 같은 작은 나라에서 통상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눈뜨게 됐고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을 공부하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학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직접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성현기자 ar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