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원자재 가격과 유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부품소재 업체들의 희비가 해당 분야에서 구축한 입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갑(수요업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을(공급업체)’들은 제조비가 올라간 만큼 당당하게 요구해서 보상을 받는 반면에 가격 경쟁이 치열한 품목을 공급하는 ‘을’들은 올려달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숨죽이는 상황이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부품소재업계의 가격 인상·인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고객사 협조받아 ‘정당한 보상’=에스피지는 7월부로 미주지역 냉장고용 얼음분쇄기 모터 수출가격을 4∼7% 인상했다. 모터에 사용되는 코어·동선의 원자재인 구리값이 오른 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는 국내 소형기어드 모터 1위로 세계적인 가전사들과 거래하고 있다. 특히 이들과 장기계약을 하는 사례가 많은데, 원가가 10% 이상 변화할 때는 재협상을 한다는 단서도 걸어놓고 있다.
이승노 에스피지 이사는 “실제 원가가 상승한만큼 바이어들도 제품가격 인상에 수긍했다”면서 “고객사의 협조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주전자재료는 삼성전기에 도전성페이스트를 공급할 때 가격연동제를 적용받는다. 도전성페이스트는 은이나 백금 등 귀금속이 주원료로, 삼성전기가 생산하는 MLCC 등 칩부품에 많이 사용된다. 연초 대비 귀금속 가격 상승으로 50% 정도 공급가를 인상받았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국제적인 거래 관행과 핵심협력사 배려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전자도 PCB 원자재인 동박적층판(CCL) 가격을 최근 5% 안팎으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위 CCL 공급업체답게 시장상황에 맞는 가격정책을 펼친 것이다.
◇“우린 어디서 보상받나”=삼성전자 LCD 백라이트유닛(BLU)업체에 마이크로렌즈필름을 공급하는 한 회사는 3분기부터 가격을 5% 인하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필름 제조에는 석유가 많이 쓰이는데 최근 유가가 150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수심만 한가득이다.
LG디스플레이에 광학필름을 공급하는 한 회사도 원자재인 PET필름 생산업체들이 3분기에 10% 가까운 가격인상을 요구하고 나서 애를 먹고 있다. 여기에 LG디스플레이로부터 지난해 하반기 10% 가까운 가격인하를 겪은만큼 올 하반기에도 이 같은 조치가 위에서 떨어질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밑에서는 올려달라 하고 위에서는 내리려고 하고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한 필름업체 관계자는 “유가가 급등하는데다 원달러환율도 내려갈 줄 모르고 있어 부담이 더하다”면서 “환율만 내려가도 원자재 구입비가 줄 텐데”라며 푸념했다.
설성인기자 sise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