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쉰 하고도 중반. 아이들은 다 컸고 큰 걱정 거리도 없다. 대부분 이때쯤이면 소일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다. ‘지천명’에서 ‘이순’으로 넘어가는 인생 황혼기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고 새로운 인생 스토리에 성공한 ‘열혈 주부’가 있다. 바로 이희자 루펜리 사장(55)이다. “그 나이에 왜 사서 고생하냐”는 주변의 충언도 있지만 이 사장은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때를 보내고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사장이 설립한 ‘루펜리’ 때문이다. 루펜리는 생활가전 전문 업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음식물 처리기를 개발해 시장을 열었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업종 간판 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 “루펜리는 음식물 처리기 시장의 역사다”
이희자 사장의 집무실은 좀 독특하다. 엔틱풍의 가구가 사장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장실 중앙에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체불명 상품으로 가득하다. 언뜻 봐서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품이 바로 이희자 사장이 직접 개발한 음식물 처리기 ‘루펜’이다. 디자인이 깔끔해 찌꺼기 음식을 처리하는 전자 제품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주방 어느 곳에 놔둬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주부가 인정한 주방의 품격을 올려 놓는 생활가전”이라는 게 결코 빈말이 아니다. “루펜이 음식물 처리기 대표 브랜드로 성공한 것은 두 가지 요인 덕분입니다. 하나는 품질이고 나머지는 바로 디자인입니다. 초기에 품질로 주부의 마음을 붙잡았다면 이 후 루펜을 음식물 처리기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데는 독특한 디자인이 주효했습니다.”
루펜리는 음식물 처리기 시장의 수위 업체다. 그것도 브랜드와 시장 점유율 면에서 2위를 멀찌감치 따돌려 논 압도적인 1위다. 국내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50만대 판매’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당연히 성적도 우등상이다. 지난 2005년 2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바로 다음 해인 2006년 수출을 포함해 5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해 관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기업과 경쟁해서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루펜리가 성공 신화를 쓰면서 음식물 처리기는 틈새 상품이라는 고정 관념을 깼다.
이희자 사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음식물 처리기 시장의 산증인과 마찬가지다. “루펜리는 국내 음식물 처리기 시장의 역사와 같은 업체입니다. 음식물 처리기라는 개념도 생소할 당시 처음으로 상용 제품을 개발했고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장의 남다른 루펜 사랑은 회사 이름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루펜리’에서 저의 성(姓) 이(Lee)를 뺀 ‘루펜(LOOFEN)’은 100% 깨끗한 환경(100% Fresh Environment)이라는 뜻으로, 우리 제품 이름이기도 합니다. 친환경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뜻을 회사와 제품 이름에 모두 담았습니다.
# “열정이 루펜을 만들었다.”
이희자 사장은 40대 후반에 ‘늦깎이’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과정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지금은 어엿한 기업의 CEO지만 20년 동안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는 평범한 주부였다. 아내와 어머니로만 살아오던 인생에 전환기를 맞은 것은 지난 97년. 대기오염 측정기 등 주로 군납 제품을 개발하던 남편 사업이 IMF 외환 위기를 맞아 어려워진 게 직접적인 계기였다. “집 안 곳곳에 경매 딱지가 붙고 사채업자가 쳐들어와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회사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파산 일보 직전이었지요. 여직원을 내보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나간 게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죠. 사실 어려서부터 사업가가 꿈이었지만 남편이 개인 사업체를 운영해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결국 IMF로 남편은 어려웠지만 저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죠. 음식물 처리기도 남편 회사에서 개발 중인 제품이었습니다.”
며칠 사무실을 오가면서 이 사장의 눈에 들어 온 것이 사무실 한 켠에 있었던 음식물 처리기였다. 그는 음식물 처리기의 위력을 단박에 알아 봤다. 만년 주부 경험 때문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살림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거예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냄새 나는 수거함에 집어넣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게다가 일반 주택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전용 봉투가 다 찰 때까지 악취를 참아야 합니다. 음식물 처리 기술을 본 순간 ‘대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역시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초보 사장에게는 모든 게 시행착오였다. 개발도 지지부진했다. 이 사장이 이때 루펜은 첫째 ‘무엇이든 다 넣어도 상관없는 제품’ 둘째 ‘남은 음식물의 악취와 세균을 완벽히 막아주는 제품’ 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끝내 ‘건조 방식’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통해 당시 음식물 처리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냄새도 잡으면서 완벽하게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얼추 1년을 허비했다. 기쁨도 잠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원하는 제품을 개발했지만 팔 데가 없었다. 변변한 유통망도 없을 뿐더러 어떻게 팔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이때 생각한 게 아파트 시공 때 납품하는 ‘빌트 인’ 제품이었다. 직접 소비자 시장을 개척하는 일보다는 쉽다고 판단했다. “듣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상품에 여자가 사장이라고 하니 임원은커녕 실무자조차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사장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온갖 설움 다 참으며 제품 하나 소개하려고 무작정 뛰어다녔죠. 그나마 이런 열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국내 건설사의 80%를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루펜리의 기반을 잡았습니다.”
# 세계 시장, 그리고 종합 환경 기업으로”
지금의 루펜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삼오엔케이로 음식물처리기를 개발해 건설업계에서 인정을 받은 후 욕심이 났다. 품질에 디자인을 입히면 소비자에게 직접 팔아도 손색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때 루펜리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시기죠. 전문 디자이너를 따로 고용하기 힘들어 미술을 전공하는 아들에게 디자인을 부탁했지요. 큰 기대는 걸지 않았는데 젊은 세대 특유의 감각으로 참신한 디자인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심플하면서 모던한 루펜이 만들어졌습니다.”
제품은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2005년을 기점으로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통해 찾는 사람이 늘어 났다. 루펜 덕분에 음식물 처리기는 생활가전 시장에서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관심을 갖는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제품 기술력이 인정받으면서 권위 있는 각종 발명 대회에서 상복도 터졌다. 제네바 국제발명 신기술과 신제품 전시회에서 금상·특별상을 받은 데 이어 특허청이 주최한 여성발명경진대회에서는 대통령상의 영예까지 차지했다. 디자인협회가 주는 환경 친화상도 받았다.
이 사장은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를 만족했다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캐나다·독일·일본 등 환경 문제에 민감한 선진국에서조차 버려지는 음식물을 대체 자원으로 바꿔주는 친환경 제품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해외에서도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루펜리는 두바이·카타르·쿠웨이트·오만·사우디아라비아 등 먼저 중동 주요 국가와 음식물 처리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 무대로 거침없이 진출했다. 업소용 음식물 처리기 설치가 의무화된 일본에서도 2006년부터 업소용 제품을 꾸준히 수출 중이다. 미국·캐나다·유럽 등 선진국에도 제품 검사와 각종 인증 절차를 끝내 제품 선적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 왔지만 이희자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음식물 처리기 사업은 시작일 뿐이다. “루펜을 통해 건조된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전환하는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국내에서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15조원, 처리 비용만 연간 4000억원입니다. 음식물 쓰레기 자체를 자원화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이미 타당성 작업을 끝낸 상태다. 이희자 루펜리 사장은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환경 기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위해 다시 출발선에 선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
◆이희자 사장은 누구.
이희자 사장은 54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평범한 산골 소녀였지만 꿈만은 야무졌다. 특별한 동기는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개인 사업을 꼭 해보고 싶었단다. 우스개소리로 그가 바라는 남편 상도 딱 하나였다. 인물도, 돈도 필요없었다. 단 하나 자기 사업체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 속으로 꿈을 꾸었고 결국 소원을 이뤘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였지만 강원도에서 과감히 경상도로 호적을 이전했다.
사업 기회도 정말 소설처럼 주어졌다. 어려워진 남편 사업을 돕다가 결국 그렇게 원하는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루펜리로 ‘인생 이모작’에 성공했다. 회사 일을 위해 법무 대학원과 디자인 대학원을 뒤늦게 다녔다. CEO로 얼추 10년이 돼 가지만 여전히 관행처럼 이뤄지는 접대, 술자리 등은 익숙하지 않다. 대신에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그림이 취미며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스케치 북으로 눈길이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