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상경영 선언 "재고를 줄여라"

절반 단축 `특단 대책` 수립

 삼성전자가 하반기 경기가 크게 위축될 것에 대비해 주요 제품의 재고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특단의 정책을 수립했다.

 삼성은 휴대폰·TV·PC 등 주요 제품에서 해외는 2∼3개월, 국내는 5∼10일의 재고 기간을 유지해 왔다. 경쟁사에 비해 재고기간이 짧은 삼성이 평균 재고 기간을 다소 탄력적으로 운영한 사례는 있지만 이처럼 기간을 절반까지 단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8일 “유가가 치솟으면서 전체 경기가 이미 꺾인 상태며 기대를 걸었던 중국 시장도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수요가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며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으며 가장 먼저 재고 문제를 손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고 기간을 적시에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재고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하반기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미 내부적으로 각 사업부에 재고 기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일 것을 지시했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수출 물량이 많은 휴대폰은 1개월 이내로 재고 기간을 줄여 나가기로 했으며 국내 대리점에서 보유하는 재고 기간이 5일 정도였던 PC도 지금은 실시간으로 제품을 받는 형태로 프로세스를 재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의 눈

 삼성전자는 상반기에도 경영지원 총괄 주재로 재고 기간과 재고량을 조정하기 위해 부문별 사업 부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재고 문제를 가장 큰 현안으로 꼽고 경영 역량을 집중해 왔다. 삼성전자가 여기에다 ‘재고 기간 절반 단축’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하반기 경기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주력 시장을 살펴봐도 분위기가 만만찮다. 중국은 올림픽 이후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북미 시장도 경기 둔화로 급속하게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환율 효과를 기대한다지만 운송료 부담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내수도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매출이 일부 품목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최대 20%까지 감소하는 등 경기 상황에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이 위기감 속에서 비상 경영의 일환으로 재고 문제를 제일 먼저 손보는 것은 전체 프로세스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재고 기간을 줄이면 일차적으로 고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비용 절감보다 경영 효율성 제고다. 재고 단축을 위해서는 사업부별로 조달에서 납품까지 각 단계의 프로세스를 전면 손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고 문제뿐 아니라 전체 경영 프로세스 혁신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재고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기획에서 조달·생산·물류까지 모든 과정에서 효율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며 “재고 자체의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단계별 개선을 거쳐 하반기 위기 상황을 넘어 보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3·4분기에 18조∼20조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삼성은 경기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연초에 수립한 경영 목표의 큰 줄기는 손질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삼성은 경기 위축에 따른 자구책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 중이며 재고 기간 절반 단축은 그 첫 번째 카드인 것으로 보인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