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의 공기가 굉장히 맑아졌다.
지난 1998년 측정 이래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낮다. 세상이 이토록 어수선한데 하늘은 어느 때보다 청명한 것은 왜일까. 고유가 위기로 차량운행이 줄면서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제3차 오일쇼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문명이 지난 한 세기의 지독한 석유중독에서 벗어나 더 편리하고 나은 세상(better place)을 만드는 길이다.
유가급등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에 탈석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GM·닛산 등 거대 자동차 회사는 21세기 자동차시장을 이끌 주역으로 ‘전기차(electric vehicle)’를 점찍고 2년 내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먼 미래의 이야기로 생각하던 전기차가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미국 GM사는 2010년부터 가정에서 직접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시보레 볼트(Volt)’를 선보인다. 볼트는 한번 충전으로 64㎞를 운행해 웬만한 출퇴근 시에는 기름을 쓰지 않는다. GM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로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선점한 다음 순수 전기차도 잇따라 개발할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볼보가 전기로 움직이는 하이브리드카를 2010년 양산하는 가운데 벤츠·폴크스바겐·BMW가 경쟁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의 닛산은 전기차 시장의 선점에 사운을 걸었다. 카를로스 곤 닛산 CEO는 2010년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전기차를 시판하고 2012년에는 전기차 판매를 전 세계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닛산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먼저 장악해서 숙적 도요타를 제친다는 원대한 야심을 밀어붙이고 있다.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
요즘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시장에 매달리는 모습은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자동차 산업의 초창기부터 전기차는 가솔린 자동차업계의 집요한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가솔린 차량 보급에 걸림돌인 전기차의 싹을 자르기 위해 관련특허를 사들인 다음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불과 10년 전에도 자동차업계의 큰손들은 일치단결해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전기차 보급계획을 철회시킨 바 있다. 당시 GM은 무려 15억달러의 개발비를 들여서 전기차 ‘EV1’을 개발했다. 이 차량은 9초 만에 시속 100㎞에 도달하는 등 가솔린 차량을 대체할 만한 최초의 전기차로 호평을 받았다. GM은 1996년부터 4년 동안 1100대를 만들고 전기차 보급계획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자동차, 석유업계의 집요한 로비가 결국 전기차가 대중화될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전기차 보급이 좌절됐지만 자동차 업계도 석유고갈과 환경규제에 대비한다는 명분은 필요했다. 대신 하이브리드차, 수소차가 친환경 자동차의 차세대 주자로 부각됐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내연기관에 모터장치만 추가되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생산라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부품수요가 늘고 연비 향상을 내세워 자동차 가격도 높아지니 일석이조다. 수소차는 공해배출이 없는 이상적인 미래형 자동차지만 수소연료의 상용화까지 앞으로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다. 자동차 업계가 너무 급진적인 전기차보다 기존 시장구도를 크게 흔들지 않는 수소차,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배럴당 150달러 선까지 흔들리는 고유가 시대가 예상보다 너무 일찍 다가왔다. 자동차 회사들의 안이한 중장기 사업계획은 기초부터 흔들리게 됐다. 지금 소비자들은 연비는 좋지만 가격은 두 배 높은 차량, 꿈같은 미래차가 아니라 당장 기름값을 아낄 수 있는 실용적인 대체연료 자동차를 원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화석연료에 미련을 두는 자동차 회사의 미래는 없다며 가능한 빨리 전기차 양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국가 교통체계에서 석유와 이별을 고할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친환경 자동차의 분류>
△하이브리드 자동차
1.병렬식 하이브리드 자동차=주행할 때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혼용하는 차량을 지칭한다. 저속 운행 시 전기모터, 고속 운행시 내연기관을 쓰기 때문에 보통 자동차보다 연비가 낫다. 전기모터에 쓰는 전력은 감속할 때 발전기를 돌려 충당한다. 병렬식 하이브리드의 단점은 두 가지 동력원을 탑재하기 때문에 자동차 가격이 비싸다는 것. 차체중량도 그만큼 늘어나 연료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하이브리드카는 무공해 자동차로 가는 길목의 과도기적 모델이다(사례: 도요타 프리우스, 혼다 인사이트).
2. 직렬식 하이브리드 자동차=내연기관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기차량을 직렬식 하이브리드카로 부른다. 병렬식과 달리 엔진의 힘은 직접 바퀴를 돌리지 않고 배터리 충전만 하기 때문에 배기량이 작아도 된다. 작은 엔진 때문에 차량 무게가 한결 가볍다. 운전 중 배터리가 떨어지면 내연기관 발전기를 돌려서 주행거리를 계속 늘릴 수 있다. 여기에 가정의 일반 콘센트에 연결(플러그 인)하는 배터리 충전기능까지 지원하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로 분류된다(사례: GM의 시보레 볼트, 볼보 C3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자동차
1. 수소연료전지차=수소를 연료전지에 주입할 때 나오는 전기로 움직이는 차량이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면 나오기 때문에 자원고갈의 우려가 없고 공해물질도 뿜지 않는 이상적 연료다. 수소연료전지차의 단점은 핵심부품인 연료전지의 가격이 1㎾당 수천만원이어서 아직 대중화가 힘들다는 것. 수소연료전지차의 연료인 영하 253도로 응축한 액화수소를 제조, 유통하는 새로운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사례:GM 시보레 에퀴녹스).
2. 수소엔진차=내연기관에서 수소를 직접 태워서 동력을 얻는 차량이다. 기존 자동차에 휘발유 대신 액화수소를 넣는 셈인데 차량 머플러에서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오직 깨끗한 물만 나온다. 수소엔진차는 폭발하기 쉬운 수소를 안전하게 다루는 특수용기, 여타 기술적 문제로 제작단가가 무려 10억원을 호가한다. 전문가들은 수소자동차의 기술,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려면 오는 2030년은 돼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사례:BMW 하이드로젠7).
△순수 전기차=이차배터리와 전기모터의 조합으로 움직이는 전기차량이다. 초기 전기차는 소음, 진동이 적고 공해물질도 배출하지 않아 인기를 끌었지만 무거운 납배터리로 인해 가속도와 주행거리에서 우월한 가솔린차량에 밀려났다. 전기차의 파워트레인은 매우 간단한 구조여서 고장날 가능성이 낮다. 전기차는 최근 배터리 기술의 비약적 향상으로 충전의 불편함과 짧은 항속거리가 개선되면서 고유가 시대에 적합한 친환경 자동차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전기차의 충전비용은 동일한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유류비의 10∼15%에 불과하다(사례:르노의 메간 일렉트릭, 테슬라모터스의 로드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