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특집]해외사례: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

 세계 1위의 기업용 SW업체 SAP 샤이 아가시 부회장(41)은 지난해 초 회장직 취임을 눈앞에 두고 사표를 던졌다. 그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전기차 보급사업에 걸었다. 지난 10월 전기차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벤처기업 ‘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Project Better Place)’가 출범했다. 주변의 반응은 놀라웠다. 달랑 사업계획서만 제안한 상태에서 무려 2억달러의 초기투자가 들어왔다. 지난해 미국에서 집행된 환경분야 벤처투자 중 최대 규모다. 샤이 아가시는 올 초 이스라엘 정부, 르노닛산과 손잡고 전기차 보급계획에 10억달러의 투자협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고유가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까지 이스라엘 전역에 50만개의 전기 충전소를 확충하고 전기차 2만대를 시민에게 보급하기로 했다. 국가 차원에서 화석연료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최초의 사례다. 전기차의 충전시설은 다음 두 가지로 구성된다. △주차장의 바닥에 내장된 무선충전기/전기차가 들어오면 무접촉식으로 배터리 충전 △전자동 배터리 교환기(V2G:Vehicle to Grid)·자동세차기와 같은 기계식 터널에 차가 들어가면 충전된 새 배터리로 교환해준다.

 전기차의 성능도 뛰어나다. 르노닛산이 공급할 전기차 ‘메간’은 NEC와 공동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해 1600㏄ 가솔린 차량 수준의 가속성능을 갖춘다. 재충전도 7000회까지 가능해 폐차까지 배터리 교환이 거의 필요 없다. 주변의 충전소 위치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장치도 기본으로 내장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전기차를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차의 충전시설과 배터리의 표준규격까지 마련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전기차 개발계획과 차별화된다.

 단순히 전기차를 성능 좋고 값싸게 만들면 소비자가 사줄 것이란 공급자 위주의 태도를 넘어선 것이다. 베터 플레이스는 소비자가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전기차 전력공급의 표준을 선점해 나머지 전 세계 전기차 회사들이 따라오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국토가 좁고 비산유국인 이스라엘은 전기차 10만여대를 2010년대 말까지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차량 구입자에 대한 보조금과 세금혜택도 강화한다. 전기차는 구입비의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원받는다. 전기차에서 가장 비싼 배터리는 개인 구매가 아니라 임대를 원칙으로 공급가격을 낮췄다. 나머지 자동차 비용도 휴대폰 요금처럼 운행거리에 따라 매달 지급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베터 플레이스는 올해 3월 네덜란드의 국영 전력회사와 대규모 전기차 공급계약을 맺고 유럽시장을 적극 노리고 있다.

 회사 측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서 전기차 인프라 보급계획이 성과를 거두면 베이징·런던·상하이 등 인구밀집 지역은 물론이고 미국 전역에 베터 플레이스의 표준형 배터리 차량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우리는 2010년대 후반까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자동차 문명을 경험하게 될 전망이다. 샤이 아가시는 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가 화석연료에 중독된 교통문화를 개선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며 많은 기업의 동참을 촉구했다.

  배일한기자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