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텔레마케팅](1)개인정보 유출 유탄에 `휘청`

황금알 기대 못해도 오리알 신세 면해야

 올해로 3년차 텔레마케터 일을 하고 있는 김아름씨(22)는 일을 못 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솔’ 톤의 노련한 말솜씨로 상품을 팔던 그녀의 목소리가 요즘 낮게 가라앉았다. “텔레마케팅 하던 사람은 이 일이 익숙해서 계속하고 싶어하지만 지금은 찾는 곳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취업난이 너무 심해서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홍영걸씨(50)는 당장 생활비가 막막하다. 막일을 하다 나이도 있고 전화 영업이 적성에 맞아 친구와 올라왔지만 최근 실직으로 인해 이번 달 방세가 걱정이다. 홍씨는 “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그동안 해온 일이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되는 것이 더욱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화영업 또는 원거리 마케팅으로 잘 알려진 텔레마케팅 산업이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이로 인한 주요 업체들의 텔레마케팅 한시적 중단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컨택센터협회에 따르면 텔레마케팅 산업의 연간 시장 규모는 11조원에 달하며 종사원은 60만∼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되지 않은 종사자를 포함하면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카드, 보험, 유통, 택배, 항공 등 각 산업체들이 잇따라 콜센터를 설립하는가 하면 지방자치단체들도 콜센터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이처럼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텔레마케팅 산업이 최근 정보유출과 텔레마케팅 중단으로 많은 종사자가 실직에 직면할 위기를 맞고 있다.

 텔레마케팅업체 라이브코어를 운영하는 김화수 사장(32)은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두어 달을 버티기 힘들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황규만 한국컨택센터협회 사무총장은 “텔레마케팅 산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의 젊은 여성들인만큼 이들의 실직사태는 청년실업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콜센터 유치도 멈춰섰다. 허필구 부산광역시 통상협력팀 과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콜센터 증설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당분간은 신규 유치보다는 재직자 교육, 사기 앙양 등 기존 콜센터 내실 강화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미국·일본·필리핀 등지에서는 텔레마케팅 산업이 제도 보완과 신뢰확보를 통해 바람에 돛을 단 듯 쾌속항진을 거듭하고 있다.

 필리핀 콜센터 산업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2000년 4곳에 불과했던 콜센터 수가 2005년 100곳을 넘은 데 이어 지난해는 259곳으로 증가했다. 이는 곧바로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두 배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났으며 이후에도 30% 이상씩 늘어 지난해 총고용인원은 19만8000명이다. 텔레마케팅 시장규모도 지난해 36억달러로 2000년 2400만달러에 비하면 100배를 훨씬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개인 사생활 보호가 어느 곳보다 강한 미국과 일본도 제도 보완을 통해 텔레마케팅 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미국은 수신자가 텔레마케팅 전화를 거부할 수 있는 수신거부등록제(Do Not Call List)를 지난 2004년 도입, 텔레마케팅이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도 지난 2005년 4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 지난 2005년 3700억엔 정도였던 시장규모가 지난해에는 거의 5000억엔까지 뛰어올랐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