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는 뭔가 사연이 있어서 악인이 된 게 아니라 원래 나쁜 놈이다. 놈놈놈은 신나게 달리면서 웃고 즐기는 영화기 때문에 캐릭터에 깊이 파고드는 것은 영화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 ― 김지운 감독
‘장화 홍련’ ‘조용한 가족’ 등 항상 새로운 시도로 관객을 놀라게 했던 김지운 감독. 그가 이번엔 웨스턴 장르를 들고 관객을 찾아왔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감독, 송강호·이병헌·정우성 주연)’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만든 세르조 레오네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평소 레오네 감독을 존경한다는 말을 해온 김 감독은 몇 년 전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이만희 감독의 1971년 활극 ‘쇠사슬을 끊어라’를 접했다. 만주를 배경으로 웨스턴을 접목한 이 영화는 한때 ‘만주 웨스턴’이라는 독립 장르로 불린 유명한 영화. 웨스턴 장르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던 김지운 감독이 그냥 지나갈 리 만무했다. 이 영화를 접한 뒤 그는 만주라는 무국적 공간에 대한 웨스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놈놈놈’이 탄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놈놈놈’은 서양 음식인 마카로니에 한국 음식인 김치 양념을 더해 만들어진 퓨전 음식처럼 독특하다. 웨스턴 장르의 3인 대립 구도를 답습했지만 고독한 조선 건맨들의 총싸움이 더해져 감칠맛 나고 ‘백인-인디언’의 정치적 구도는 도덕심이나 사명감이 아닌 서로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로 치환돼 재미가 배가된다.
사실 치환된 캐릭터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놈놈놈’의 최대 매력은 캐릭터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별다른 고민이 없는 존재다. 1930년대 만주. 정체불명의 지도를 둘러싸고 쫓고 쫓기는 이들은 전통적인 웨스턴 주인공처럼 뻔한 도덕심이나 어설픈 사명감을 들이대지 않는다. 박창이(이병헌), 박도원(정우성), 태구(송강호)는 자신들만의 룰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다. 악착같이 살아남는 태구, 현상금이 목적인 냉혈한 도원은 모두 현실적이다. 살아남기도 힘든 시대에 명예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창이가 약간 튀긴 하지만 마적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고민 수준도 낮긴 마찬가지다.
고민 없는 단순한 캐릭터는 극의 무게감을 가볍게 하지만 경량화된 줄거리는 활극엔 안성맞춤으로 작용한다. 디테일로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김지운 감독의 장기는 ‘놈놈놈’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캐릭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다소 불친절한 편이다. 2시간 15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어디에도 세 주인공의 고민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영화를 봤을 때 이 점이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그들이 왜 만주에 왔고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지만 ‘킬빌’의 수록곡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샘플링한 배경 음악 아래에서 벌이는 대평원 추격신은 이를 보상받기에 충분하다. 지도를 든 태구가 제일 앞에서 달리고 그 뒤를 창이파, 일본군이 쫓는 이 장면은 30여마리의 경주용 말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도둑들이 장물을 거래하는 곳인 ‘귀시장 액션’도 캐릭터의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웨스턴을 가장한 동양 액션 무비라는 정두홍 무술 감독의 말과 같이 도원이 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무협지 액션과 일합에 적을 제압하는 창이의 칼솜씨는 캐릭터의 심적 깊이를 밸 만큼 뛰어나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