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를 타고 가다 스미스소니언역에 내리면 바로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거대한 직사각 형태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워싱턴을 방문한 사람 중에 사철 푸른 잔디로 덮여 있다는 이곳, 바로 내셔널 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공원 가로 길이 나 있긴 하지만 잔디밭 가운데에 들어가 길게 누워 잠을 청하거나 연인과 나란히 엎드려 사랑을 속삭여도 되고, 아이와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해도 된다. 바쁜 업무나 빡빡한 여행 일정 때문에 심신이 지친 사람이라면 푸른 잔디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 여유롭게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곳을 단순한 공원이라고만 생각해선 곤란하다. 내셔널 몰의 서쪽 끝에는 오벨리스크 형태의 거대한 기념탑인 워싱턴 모뉴먼트, 오른쪽 끝에는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어 워싱턴 관광 출발의 좋은 포인트다.
무엇보다도 내셔널 몰의 진가는 이곳에 인접한 15개가량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드러난다. 스미스소니언 캐슬이라고 불리는 본부 건물을 포함한 박물관들이 몰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흔히 하나로 뭉뚱그려 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10개 이상의 박물관으로 구성된데다 연간 관람객 2000만명 이상, 운영비 1억5000만달러, 직원만 4500명이라는 규모를 생각하면 그냥 ‘관’이 아니라 ‘단지’인 셈이다. 모두 사람들로 붐비지만 자연사박물관과 항공우주박물관 등이 특히 유명하고 인기도 좋다.
영국의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였던 스미스슨(Smithson, 1765∼1829년)이 사망하면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5만달러를 미국 정부에 기부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영국 사람이 자기나라 정부도 아니고 하필 미국에 재산을 기부한 속내를 누가 알랴.
어쨌든 몰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워싱턴 모뉴먼트나 국회의사당에서 출발, 발길 가는 대로 하나씩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피곤할 때마다 잔디밭으로 들어가 쉬는 것.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나오면 그만이다. 입장료가 얼마냐고? 염려 마시라, 몽땅 공짜다. 게다가 보고 싶은 박물관이 있어도 시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몰 주변을 둘러보는 데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튼튼한 다리와 허리,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이름 때문에 지나치기 쉬운 국립문서보관소를 추천한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보는 것도 좋지만 역대 대통령 등 유명 인사의 편지나 노트, 일기가 전시돼 있어 역사의 향기를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순욱기자 choi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