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옛 LG벤처투자) 사장(45)과 대화가 깊어지면서 느껴졌다.
완벽한 그도 가끔 당황해했다.
신문 지면에 담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부분이다.
계속된 질문에 솔직히 말했지만 너무 사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구 사장은 이른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조부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옛 LG유통 부회장)의 장남이기도 하다.
그런 가족 환경을 어떻게 생각할까.
솔직했다.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잘 활용하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가족 환경이 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재밌다.
“우리 집안 식구들이 뒷골목 가서 찌개 먹는 게 특징입니다. 영어로 ‘험블(humble)’하다고 하죠.”
그는 노력파다.
지기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다”고 당당히 말한다.
대학(서울대 경제학 학사,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도 그랬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그랬다. 그가 가고 싶던 곳이다.
그리고 사례를 들었다.
KDI에서 매킨지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이다. 매킨지에 있던 친구에게 이직을 고민한다고 했더니 ‘아는 사람 대부분이 매킨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에 자극이 됐고 욕심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 그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꿈을 접기도 했다.
그는 학창 시절 한국 경제를 이끄는 수장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1983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사태로 고인이 된 서석준 경제부총리,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국 경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LG 가문 출신이고, 공무원 특유의 정치적 행보가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LG벤처투자에서도 무척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는 당시를 “두려웠다”고까지 말했다. 취임 첫해인 2003년 자본금 300억원인 회사에 적자 규모가 300억원을 넘었고 부채도 200억원대였다. 당시 한 직원이 그에게 회사 비전을 물었다. 구 사장은 “고민해서 말하겠다”고밖에 말을 못했다. “지금은 생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사기가 꺾일 것을 우려했다.
그는 회상했다.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혼자 술도 마셨습니다. 주변에 어렵다고 말하면 ‘너 돈 있잖아’ ‘그룹에 도와 달라고 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힘든 시기는 분명 약이 됐다.
‘정말 잘하자.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자. CEO 능력을 따지자. 경쟁사와도 비교하자.’
매번 평가할 때마다 되뇌였다.
노력은 결과로 나타났다.
회사는 쾌속 성장했다.
300억원대 적자 회사는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흑자 폭은 매년 커졌다.
구 사장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이다.
최근 바꾼 회사 로고에 있는 21개의 별도 ‘사람’을 상징한다. 21은 동양인이 좋아하는 숫자 ‘3’과 서양인이 좋아하는 숫자 ‘7’을 곱해 나온 값이다.
그래서 사람을 면밀히 본다. 직원을 뽑을 때도 투자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태도를 많이 본다고 했다. 실력은 쌓으면 되지만, 태도가 나쁘면 실력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적은 있어도 후회는 안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 교수에게 들었다며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현재는 일을 펼친 것에 대해 후회하지만, 먼 훗날에는 왜 당시 그것을 안 했을까 하고 후회를 합니다. 과감하게 일을 하라는 것이죠.”
그의 집무실에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구 창업자는 세계적인 그룹을 일궈냈다. 주로 부친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부친이 새로운 사업에 대해 자문하면 마치 1년 전부터 고민을 했던 것처럼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높은 예지력과 명석한 판단력을 발휘했다고 덧붙였다.
집무실의 크지 않은 테이블에는 두 종의 같은 책이 여러 권 쌓여 있다.
좋은 책이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권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넓은 인맥이 떠올랐다. 그의 학력(경제학 박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책을 무척 즐긴다.
최근 그는 모든 직원에게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사명 변경에 맞춰 책상에 각자의 이름이 적힌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사람을 최우선시하는 그의 아이디어다.
CEO 말고 꿈을 물었다.
뜻밖에 ‘산에서 살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다고 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한국에서 가기 힘든 곳이 어딘지 고민하다가 홀로 케냐와 이집트 여행을 갔다 왔다. 여행차 가본 나라가 35개국에 이른다.
현재 목표는 최대주주로 있는 LB인베스트먼트 그리고 광고회사인 LBEST와 반도체공정회사인 LB세미콘을 업계 최고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LG그룹에서) 이제는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커야 합니다. 예전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성공해서 (LG그룹을) 도와야죠.”
김준배기자 joon@
구본천 사장은
구본천 사장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LG가(家)’라는 부유한 가정 환경에도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위치한 자리에서 언제나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탁구선수였던 그는 경기에서 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학업으로 이어졌고 그가 꿈꾸던 서울대 경제학과,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정부관료를 꿈꿨다. 그래서 미국 유학 후 KDI에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열심히 연구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와 기업 퇴출 분야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매킨지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겨 신사업 발굴과 대형 기업 인수합병(M&A)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역량을 키웠다. 부친 추천으로 2001년 LG벤처투자의 상무를 맡았다. 2003년 회사 대표로 올라선 그는 1년 만에 적자 투성이인 회사를 흑자로 바꿔놓았다.
벤처 경영자의 진정한 ‘조언자’면서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최근 사명을 LB인베스트먼트로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 중이다.
‘존경 받는 기업인.’ 어찌 보면 소박한 구본천 사장이 그리는 미래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