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제 32회 ICANN 파리회의“다극화 시대가 도메인 대개방 결실 낳았다"

[글로벌리포트]제 32회 ICANN 파리회의“다극화 시대가 도메인 대개방 결실 낳았다"

  ◆ 제32회 ICANN 파리회의 참석 후기 

‘패션의 나라’ 파리를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오히려 비싸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엔 색다른 느낌이 하나 추가됐다. 파리 시민들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사정에 밝은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교외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파리만은 국제적인 도시니 시민들도 영어 쓰는 데 능통하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파리에서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32회 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는 인터넷 주소 완전 개방안에 대한 투표가 실시됐고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009년 초에는 ‘love.love’나 ‘대한민국.한국’ 같은 도메인을 볼 수 있다고 공표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탈미국’ 분위기=이번 회의의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됐던 인터넷 정책에서 유럽과 제3세계 국가들이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각 국가들이 인터넷 주소와 같은 글로벌 자원을 함께 나누고 이러한 모델이 다른 국제 기구에도 영향을 미치길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때문인지 이번 총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특히 자국어 인터넷 도메인 서비스(IDN:Internationalized Domain Names)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각국 자국어 주소 서비스를 하지 않으려던 ICANN이 갑자기 원래부터 적극 추진해온 것처럼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낯설게 여겨졌다. 그동안 인터넷 주소는 미국의 주도 아래 획일적으로 진행돼왔다. 1999년부터 많은 단체가 자국어 인터넷 도메인 서비스를 끊임없이 요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우리나라도 한글도메인 서비스를 했지만, 주소를 보면 반만 한글이고 나머지 반은 영어로 제공되고 있다.

◇다극화 체제가 도메인 대개방 낳았다=ICANN의 태도가 바뀌게 된 배경 중 하나가 중국이라고도 한다. 중국은 1여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인 인터넷 주소 체계를 출범시킨 바 있다. 중국 말고도 이스라엘, 러시아 등은 몇몇 나라가 이미 자국어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제사회 권력 지형이 미국 독주 체제에서 벗어나 다극 체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인터넷 주소 체계 변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관련업계에선 인터넷 주소를 세계 자산으로 인식한 유네스코와 ICANN의 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자국어 인터넷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려 하자 ICANN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도메인 완전 개방에는 걸림돌도 많아=말 그대로의 도메인 완전개방에는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다. 파리 회의에 참석한 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신규 도메인을 획득하려는 레지스트리 사업자가 다음과 같은 ICANN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레지스트리 및 루트 서버 운용 경험 △ICANN 산하 기관과 전문가들의 심사 통과 △재무 건전성 평가 등이다. 또 비용도 많이 든다. 과거에는 레지스트리 업체가 도메인을 오픈하면 보증금 개념으로 7만달러를 납부하고, 사업을 끝내면 납부한 돈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허가 비용 개념으로 10만달러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접더라도 돈은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이 늘고 위험 요소가 생긴 것이다.

조관현 디지털네임즈 대표 a@hangul.net

◆용어 설명

제32회 ICANN 파리 회의=ICANN은 최근 프랑스 파리 총회에서 최상위 도메인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인터넷 주소 완전 개방 방안을 승인했다. 내년 4월부터 기업이나 단체, 도시, 개인 등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최상위 도메인을 정할 수 있어 최상위 도메인 수가 무제한으로 늘어나게 된다. 영어 외에도 아시아, 아랍 지역 언어로도 최상위 도메인을 신청할 수 있다. 인터넷 주소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인터넷 역사상 가장 큰 주소 체계 변화가 될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누구든 ‘.love’ ‘.seoul’ ‘.kim’ ‘.sk’ 등 도메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등록 비용은 5만∼10만달러로 예상된다.

 

 

 

(소박스)

한글도메인은 어떻게 운영될까. ICANN은 자국어 도메인도 영문 도메인과 마찬가지로 국가 도메인 ccTLD와 일반 도메인 gTLD로 나누어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따라서 영문 ‘.kr’에 해당하는 ‘.한국’과 같은 TLD는 지금처럼 국가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규로 생기는 일반 한글 도메인은 외국처럼 민간기관에서 사업권을 확보해 운영할 예정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베리사인이나 뉴레벨처럼 경험 있는 민간 레지스트리업체가 없어 ICANN의 조건을 통과할 민간 업체가 신속하게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디지털네임즈, 하우앤와이, 아이디엔에스 3사는 지난 6월 한국아이디엔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한글 도메인 사업자 선정에 발빠르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아이디엔컨소시엄은 자국어 도메인을 처음 개발한 싱가포르 회사의 국내법인인 아이디엔에스코리아를 매입해 자국어 도메인 관련 특허권을 확보하고, 올 7월부터 ‘.한글’ ‘.회사’ ‘.기관’ 특허기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또 가비아, 후이즈, 메이크샵, 인터넷나야나, 메가존, 한국정보인증 등을 통해 등록 대행을 하기로 협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