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텔레마케팅](2)허술한 제도와 영세성도 한 몫

[위기의 텔레마케팅](2)허술한 제도와 영세성도 한 몫

 최근 지방 A은행은 고객을 대상으로 신사업을 계획했다가 잠정 중단했다. 고객 정보 활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A은행은 기존 고객의 수요를 바탕으로 신사업을 기획했다. 그러나 현행 법상 기존 고객 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항에 고객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A은행은 과거 고객 정보 파악 과정에서 동의를 받지 않았다. 결국, A은행은 모든 고객에게 신사업 관련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고 특히 이 경우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현행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견해대로라면 아웃소싱을 이용한 전화 영업은 사실상 불법이 된다. 그동안 수년째 하던 일이 한순간에 ‘나쁜 짓’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걸려오는 전화(인바운드)만 받는 소극적 산업으로 위축이 불가피하다.

  ◇개인정보 활용 범위 모호=텔레마케팅 산업이 개인정보보호 논점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은 현행 제도가 지닌 문제 때문이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정통망법)’ 등 개인 정보 활용을 다루는 법 규정에서 텔레마케팅을 위해 개인정보를 어느 범위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나로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사실상 개인정보 활용 범위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정통망법에는 통신업자가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지만, 기업 활동에는 위탁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그러나 이때 ‘위탁’의 조건에 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경찰 측은 하나로텔레콤 수사를 발표하면서 “위탁업체와 마케팅 대상이 바뀌면 다시 고객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위탁업체 변경 등을 홈페이지 등에 공지를 하면 동의를 받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영업을 했다.

 과거 정보통신부 시절 통신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홈페이지 공지 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면서 엄격하게 해석을 하는 등 태도가 바뀌었다. 법 자체에서 텔레마케팅 등에 대해 명확하게 어느 선까지 위탁이 가능한지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규만 한국컨택센터협회 사무총장은 “텔레마케팅이 하나의 산업이고 고객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에 활용 범위 등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분별한 개인정보수집 근절돼야=기업들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고 이들로부터 정보를 받아 영업하는 텔레마케팅 업계만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주민등록번호 등 중요 정보를 무분별하게 취득하는 행위부터 먼저 규제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고객의 나이와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소를 기본적으로 확인한다.

 김일환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민간 부문이 주민번호 의무 기재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번호는 민간기업이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정보 수집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실력 있는 텔레마케팅 업체와 불법 업체 간의 ‘옥석 구분’도 가능해진다. 그래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제한된 고객의 정보를 활용하는 선진적 텔레마케팅 업체가 각광을 받을 수 있다.

 또 고객의 개별적인 정보에 대해 텔레마케팅 업체의 고객이 되는 원청 기업들도 수집의 노력을 같이 기울일 수 있다. 고객 기업, 아웃소싱 텔레마케팅 기업 모두가 업그레이드돼야 개인정보도 보호하고 산업도 산다는 얘기다.

  ◇기존 정보 양성화 대책 필요=법 해석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내가 허용한 전화만을 받는 ‘옵트­인(OPT-IN)’ 방식만 가능하다. 개별적인 상황마다 당사자에게 개인정보를 활용해도 좋다는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모아놓은 개인정보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 고객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받기 위해 전화나 메일을 보내야 한다.

 문제는 동의를 받기 위해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는 비용을 누가 감당하는지다. 텔레마케팅업체들에 사전 동의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는 고객사들은 아직 없다. 설사 비용을 충당받는다 하더라도 보이스피싱 등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선뜻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정상적인 텔레마케팅업체들이 활동을 중단한 사이 기획부동산, 고리 대출업체 등 음성적인 텔레마케팅 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영업하는 정상적인 텔레마케팅 업체가 영업을 못 하게 되면, 결국 많은 영업 인력이 불법 업체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텔레마케팅업체 영업부장은 “단순 전화 영업은 전화기 몇 대만 있으면 가능한데다, 기존 콜센터 인력들도 일을 찾아 옮겨갈 수 있어 결국 텔레마케팅이 음지의 산업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또 이미 노출된 개인정보 등의 판매도 우려된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부정적인 방법을 통한 개인정보의 거래와 무작위 전화 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 사무총장은 “개인 신상정보를 통한 고객관계관리(CRM)를 허용해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허용하고, 불법 업체 등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해 텔레마케팅 산업을 건전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업계`TM=스팸전화` 이미지 쇄신 필요성 제기

 텔레마케팅(TM) 산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원인을 TM 업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부 업체의 무분별한 전화 영업으로 고객들이 TM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고객의 정보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단지 영업 수단으로 삼는 관행이 스스로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TM이 기업의 중요한 영업 수단으로 지난 2000년 이후 급성장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TM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업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고 순식간에 ‘레드 오션’으로 변해버렸다. 이로 인해 저가 수주 경쟁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업체들은 자사의 존립만을 위해 이전투구식 영업을 일삼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TM 업체 부장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며칠 뒤 인근 건물에 전화기 10∼20대와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경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결국 고객에게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단기 이익에 급급하면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일부 업체들이 결국 도를 넘어 영업했다는 것이 TM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고객 회사가 제시한 합법적인 명단 외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서 모객을 하거나, 일부는 불법 명단을 활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추가 영업을 하는 등 편법 수단을 이용하는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획부동산’이나 대출 관련된 무허가 업체들의 영업도 TM 산업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이들은 특정 아파트 명단에 무단으로 전화를 걸거나 휴대폰 번호를 생성해 영업을 함으로써 ‘TM=스팸 전화’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덧씌웠다.

 정보기술(IT)로 무장한 TM 업체는 엄격한 개인정보 관리로 인해 고객정보 유출이 사실상 어렵다. 신고도 하지 않고 영업하는 불법 TM 업체는 고객 정보 관리에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불법 TM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일부 텔레마케터들은 고객 명단을 복사해 간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도덕적 해이도 있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결국, TM 업계가 건강하게 소생하기 위해서는 업계 내에서 ‘옥석 가리기’를 통해 불법 TM 업체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그렇게 해야 텔레마케터에 대한 교육도 강화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