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은 피보다 진하다.’
G밸리에 자리 잡은 오피스빌딩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친인척보다 더 끈끈한 정을 자랑하는 입주사 협력네트워크다. 한국사회에서 혈연·지연이 강하다고 하지만 G밸리에는 건물연도 그중에 하나가 될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한다. 업무를 하다 막히는 점이 있으면 비슷한 업무를 하는 담당자에게 문의를 하기도 한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함께 논의하기도 한다. 사소한 것부터 큰 사업 제휴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생각할 때 이웃사촌, 즉 입주사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 G밸리인들의 대답이다.
G밸리에서 건물 입주사 협력 네트워크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바로 금천구 가산동에 자리 잡은 롯데센터다. 롯데센터에 입주한 롯데정보통신·코오롱아이넷·코오롱베니트·유넷시스템의 4개 회사는 지난 3월 입주사 협력 네트워크팀을 발족했다. 매달 셋째 주 금요일에 모여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관리비가 어떻고 건물온도가 어떻다는 건물 운영에 한정적인 회의를 하는 건물 운영위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외형적인 건물 운영이 아닌 내형적인 제휴의 끈을 만들기 위해 만든 팀이라는 것이다.
김은진 유넷시스템 부장은 “입주사 협력 네트워크에서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과 정보의 교류가 주목적”이라며 “특히 입주한 각각의 기업이 저마다 장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뚜렷하므로 해당 분야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영업할 때 공동전략을 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첫 모임에 임원진이 참석해 회사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모임의 취지와 동기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이어 실무자 위주의 회의를 시작해 영업담당직원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사업 제휴 아이디어의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실무자 회의에 참석한 롯데정보통신 한유리씨는 “각사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공유를 통해 새로운 매출처를 확보한 사례도 있다”며 “실질적 영업정보 공유를 통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모색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이러한 회의를 진행하는 이유는 같은 공간에 있는 입주사끼리는 이슈에 대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서로 시너지를 발휘해 윈윈할 기회를 만들기 쉽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주한 MDS테크놀로지의 이은영 과장은 홍보에 대한 마땅한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을 때 같은 건물인 코오롱디지털타워빌란트에 입주해 있는 다른 기업의 업무자를 찾는다. 2006년 비슷한 시기에 코스닥에 등록한 오늘과내일·윈포넷의 홍보 담당자들의 모임은 언제든 든든한 힘이 돼 준다. 최근 이은영 과장이 마땅한 세미나 장소를 찾지 못할 때 좋은 장소를 귀띔해준 것은 바로 이 모임이었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MDS테크놀로지와 서버 사업 등을 하는 오늘과내일, DVR전문기업인 윈포넷은 모두 사업 영역이 다르지만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도울 일이 많다.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같은 건물 안에 있어 마치 같은 회사에 있듯 짬짬이 커피 한잔을 하면서도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영 과장은 “함께 친선 체육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며 “이렇게 같이 모이면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기업에 대한 자부심도 키워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승호 세리정보기술 사장도 G밸리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하다못해 음식점에 대한 조언부터 직원 복지 등 공동으로 갖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고자 소프트웨어 기업 CEO들과 잦은 만남을 갖는다. 이 역시 인근에 있기 때문에 작은 고민을 나눌 때에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협력 네트워크에 대해 입주사들은 당장의 큰 성과를 바라지 않는다. 작은 도움을 주는 이웃사촌의 역할에도 큰 만족을 하고 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기회와 효과를 얻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댄다.
심종헌 유넷시스템 사장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에 회의를 통한 시너지를 발휘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며 “뚜렷한 성과를 내기까지 씨 뿌리는 과정이 필요하고, 지금은 그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정균태 미래테크놀로지 사장 인터뷰
“구로는 비즈니스를 위한 공간입니다.”
구로디지털단지 입주 5년차에 접어든 정균태 미래테크놀로지 사장의 구로 예찬이다. 창업 당시 사무실이 자리했던 홍대 근처를 떠날 때만 해도 고향을 떠난 듯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구로디지털단지가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구로는 마음껏 일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비즈니스의 공간이었다. 비용부담이 많은 중소기업에 분양을 위한 대출혜택부터 등록세 법인세 감면 등의 다양한 혜택에 대한 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정 사장은 “개발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좋다”며 “게다가 정말 다양한 비즈니스인들을 만날 수 있어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정보가 열려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균태 사장은 융합형 일회용비밀번호(OTP) 단말기 개발에 열중이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메모리해킹 방지용 OTP, 보안토큰(HSM)과 결합형 OTP, 카드형 OTP 등 신개념 OTP 단말기를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이러한 융합형 단말기를 내놓을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를 꼽으라 해도 G밸리를 들 수 있다. 인근 하드웨어 개발 기업들이 많아 누구보다 빨리 협업을 이뤄내면서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동 개발에 대한 논의도 심심치 않게 이뤄진다. 이니텍, 잉카인터넷 등 든든한 보안 업체들이 인근에 함께 있어서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사소한 계기가 큰 사업의 기회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바로 G밸리”라며 “그렇다보니 친선 모임도 소홀히 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당분간 새로운 OTP와 보안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OTP 시장은 한창 커가고 있지만 저가 경쟁과 가격 압박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제품으로는 수익을 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으로 누구보다 먼저 시장을 여는 것이 OTP 단말기 기업들의 살길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G밸리의 인프라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OTP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
◆고려대 구로병원, 대규모 증축
밀려드는 기업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G밸리 내 의료 서비스 시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 1600억원을 투자, 대규모 증축과 함께 국내 최고 수준의 원스톱 의료시스템을 만들었다.
지난 83년 300병상 규모로 개원한 고대 구로병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G밸리 내 대표 의료시설이다. 반면에 일일 입원대기 환자가 700여명에 이르는 등 만성적인 병실부족 현상에 시달려왔다.
고대 구로병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증축에 들어가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최근 지하 1층 지상 9층의 본관을 리모델링하고 지하 4층 지상 8층의 신관을 새로 지었다. 그 결과 연면적 8만m²에 총 1050병상을 갖춘 대형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극심했던 병실부족 해소뿐 아니라 고대 구로병원은 명실상부한 선진 의료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환자들이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당일 진료에서 검사 및 시술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일일수술센터, 통원항암치료실, 24시간 진단검사자동화시스템 등 원스톱 진료시스템을 완성했다. 국내에 처음 도입되는 방사선 영상유도 암치료기(trilogy)를 비롯해 PET-CT, MRI 3.0T, 64채널 MDCT, 심·뇌혈관 디지털 진단치료기기, TLA시스템 등 시가 500여억원에 달하는 최첨단 의료장비도 들여왔다.
질환별 특성화로 심혈관센터, 간소화기센터, 당뇨센터, 암센터, 안이비인후센터, 피부미용성형센터, 여성암센터 등 대표전문센터와 클리닉도 만들었다. 자가 이식이나 골수 이식 전 항암치료 환자들을 위한 무균병동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청정도 규격을 만족시킬 정도다.
아울러 병실은 6인실에서 5인실로 모두 변경해 환자 개인공간을 더욱 넓혔다. 국내 어디서든 단시간 내 모든 응급환자 이송이 가능토록 신관 옥상에 항공응급의료시스템도 만들었다.
변관수 고려대 구로병원장은 “시설 및 장비의 업그레이드와 환자중심의 의료시스템 재정비로 일류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며 “외연 확장뿐 아니라 내실 있는 최고의 책임진료로 대한민국 대표 병원이자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장동준기자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