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허상과 욕망의 존재인 ‘자기’를 부인하고 무소유의 참사랑인 십자가의 삶을 실천할 것을 이야기한다. 참으로 깊은 이야기들인 듯 싶다.
우리 인류는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불구하고, 부와 식량의 분배 불균형으로 인해서 기아로 허덕이고 죽어가는 곳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의 사람들은 잘 먹는 것이 최우선이다. 채워야 한다. 반면에 잘 먹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건강한 사람은 또한 적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몸이 좋지 않을 때 무엇을 먹으면 좋아질지, 무슨 운동을 하면 좋아질지 찾게 된다. 마음이 불편할 때도 무엇을 하면 그 불편함과 괴로움이 사라질지를 찾는다. 그래서 몸에 좋다는 음식도 찾아서 먹어보고, 이런 저런 운동도 해본다. 나쁘지 않다. 그만큼 심신을 챙기고 건강해지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들이 때로는 치유의 핵심과 영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힘내라고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열이 더 나고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중병에 걸린 허약한 노인에게 고영양의 음식을 주었다가 체기(滯氣)가 생기면 급사할 수도 있다. 평소 꾸준히 과식하는 것이 몸에 독으로 쌓여 성인병을 부를 수도 있다. 마음은 어떠한가. 비워야 할 자리에 내가 아닌 것들이 가득 차서 주인 행세를 하고, 결국엔 그것이 몸마저 병들게 한다.
부족한데 무슨 말이냐고 할지 모른다. 수입, 지위, 안정성, 자식 교육, 노후 모두 부족하고 염려스러운데 무슨 이야기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움으로써 이미 채워져 있음을 아는 것이 건강의 시작이자 행복의 조건임을 어떻게 하겠는가. 힘든 시기임에도, 비움으로써 채움을 시작하는 건강한 우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