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CEO]크리스탈지노믹스 조중명 사장

[파워CEO]크리스탈지노믹스 조중명 사장

 날씨가 흐린 지난 2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진료 때문이 아니다. 병원 내 아산생명과학연구소에 입주한 신약개발 전문 바이오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조중명 사장(60)을 만나기 위해서다.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렸지만 되레 조 사장의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비춘다. 40대 후반 CEO처럼 젊고 밝게 느껴졌다.

 90년대 당시 그는 LG화학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과장에서 3년 만에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를 진두지휘했다. LG그룹연구대상도 4번이나 수상했다. 그런 그가 2000년 8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직서를 던졌다. 안정된 월급쟁이보다 위험 부담이 따르지만 세계 신약 개발 시장에서 맹주(?)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다.

 조 사장은 “LG화학을 그만둔 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면서 “창업 이후 7년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도 없다”고 말했다. IQ 156 정도의 지능이면 요령 피우면서 일할 법도 한데 그에겐 익숙지 않은 듯하다. CEO들이 흔히 겪는 외로움조차 그에겐 낯선 단어에 불과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를 글로벌 신약 개발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젊음의 비결인 셈이다.

 # 우리나라 생명 공학 1세대를 이끌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동물학과 69학번이다. 대한민국 생명공학 1세대다. 석사 과정을 밟을 1973년 당시 생물학 분야에선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했다. 1973년 세계핵산학회에서 보이어와 코헨 박사가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세균에서 분리한 DNA를 이어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현대 생명과학의 기초를 이룬 유전자 재조합 기술 또는 유전공학 기술이다.

 당시 미국에 바이오 벤처 붐이 거세게 일었다. 카이론·암젠·제넨텍 등 바이오 벤처 기업이 설립돼 인간성장호르몬, 간염 백신, 빈혈치료제 등의 다양한 유전공학제품을 개발했다. 미래학자들도 분자생물학를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했다. 생명공학 열기는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분자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원자력연구소 분자생물학 연구소에서 그는 4년을 일했다. “이런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연구원 생활이 편했습니다. 느슨한 제 모습을 발견한 순간 결심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분자생물학 관련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죠. 미국 휴스턴대학교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조 사장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생명공학 관련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은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생명공학 붐이 80년 이후에나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고려대가 유전공학 관련 학과를 제일 먼저 신설했고 다른 대학들이 뒤를 이었다. 배출된 우수 인재들이 대기업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3 때 서울 의대에 뜻을 뒀다. 그런데 ‘생물학을 전공하면 대학교수를 손쉽게 할 수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동물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서울대 진학률을 높이려는 담임 선생님의 꼬임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저보다 성적이 뒤처지는 고등학교 한 반 친구들이 서울의대를 갔습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요즘처럼 힘들게 병원을 운영하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저를 부러워하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대를 선택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입니다.”

 

 #우리나라 신약 개발 시대를 열다.

 조 사장은 1984년부터 대기업 럭키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현지에 럭키와 세계적 백신 기업 카이론이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한 럭키 바이오텍 연구소에서 카이론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럭키바이오텍 연구소가 철수하기까지 조 사장은 B형 간염진단 시약·성장 호르몬 등 다양한 연구 경험을 쌓았다.

 “당시 럭키에 입사하기 전에 삼성과도 입사 인터뷰를 했습니다. 삼성과 달리 외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운영한다는 럭키의 혁신적인 설립 취지에 공감을 하고 럭키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럭키바이오텍 연구소에 3년만 있다가 이 경험을 토대로 귀국, 대학 교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룹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당시 구자경 전 회장이 생명공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조 사장은 구자경 전 회장이 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생명 공학 분야에 아낌없는 투자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사업 예산을 확정하면 회장에게만 보고할 정도로 그룹의 지원과 신임이 컸습니다. 86년 당시 연암 축사에 성장호르몬을 접종한 돼지 발육 상태를 보고 모두들 기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생명공학이 어떤 성과를 내는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죠. 이 덕분에 그룹 연구대상를 받았습니다.”

 LG전자가 89년 전자부문에서 삼성에 추월을 당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생명공학 분야에서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그룹 방침 덕분에 전폭적인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원은 결실을 맺었다. LG그룹이 지금도 삼성생명공학 분야에서 삼성을 앞선다.

 또한 다국적 제약 기업과 4개의 신약 개발 과제를 1억4000만달러에 기술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팩티브’다. 우리나라 신약 사상 처음으로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1999년 승인받아 신약 개발 시대의 물꼬를 텄다. 특히 신약 승인을 받은 국가도 세계적으로 1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팩티브는 퀴놀론계 항균제로 경·중증 폐렴, 만성 호흡기 질환의 급성악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조 사장은 94년 한국으로 귀국,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화려한 그의 연구 경력은 귀국한 지 3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일조했다. “바이오텍연구소 연간 예산이 450억원에 달했습니다. 연구소를 이끌면서 인간성장 호르몬, B형간염백신 등 10여종의 바이오 신약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16년 동안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며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사장은 마음 한구석에서 허전함을 감출수 없었다. 지구상에 없는 우수 신약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을 대기업에선 실현하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들이 있기 때문이다. 팩티브보다 더 혁신적인 약을 개발하고 싶은 그의 욕망은 2000년 8월 크리스탈지노믹스 창업의 배경이 됐다.

 그는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이오텍연구소 인력 및 김성호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 등 국내외 전문가 10여명과 함께 단백질구조 분석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설립했다. 창업 자금은 11억원. 바이오 기업 특성상 연구 기자재 구입에 창업 자금 대부분을 사용했다. 대기업의 투자가 뒤따르지 않았다. LG가 투자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발을 뺐다.

 바이오텍연구소 인력 11명이 크리스탈지노믹스에 합류, LG 측 심기기 불편해진 것이다. 물론 조 사장의 ‘인력빼가기’ 의도는 전혀 없었다. “창업 이후 돈 들어가는 데는 많고 돈 나올 곳은 없고 3개월 동안 막막했습니다.” 낙천주의자인 그였지만 창업 초기 돈가뭄은 적지 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SK가 벤처펀드 50억원을 그해 11월 투자했다. 이후 조 사장이 이끄는 크리스탈지노믹스 행보는 바빴다. 2003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발기부전 치료제의 표적 단백질(PDE5)이 체내에서 작용하는 3차원 구조를 규명한 논문을 게재했다. 구조가 표지에도 실렸다. 세계 최초로 저산소증 표적단백질 3차원 구조도 풀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일본 다이이치산쿄, 미국 스마트바이오사이언스 등과 유수 제약 기업들과 상호 기술을 교류한다. 올해 4월엔 한미약품에서 306억원을 투자받았다. 제약 기업의 벤처 기업 단일 투자 규모로 사상 최고다. 조 사장은 안정된 자금력을 토대로 차세대 관절염 치료제, 경구용 저산소증 치료제, 항암제 등 신약 분야에서 수년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계획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를 기업 가치가 45조원인 바이오기업 ‘길리어드’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3차원 단백질 구조 신약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멋진 기업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도전하는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조중명 사장은 누구

조중명 사장은 1948년 강원 태백에서 태어났다. 조 사장은 1969년 서울대 문리대 동물학과에 입학, 졸업 후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조 사장은 연구원보다는 대학교수에 뜻을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휴스턴대학 생화학과 81년 박사 학위를 받고 84년까지 베일러 의과대학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중 럭키의 제안으로 럭키 바이오텍 연구소에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391건(국내 351건, 국외 40건)의 특허를 출원했거나 등록했고 25편의 학술 논문(국내 5편, 해외 20편)을 발표했다. 수상과 포상 경력도 화려하다. 조 대표는 금탑 산업훈장을 비롯, 대통령 표창, 신지식인 선정,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 외 조 사장은 중소기업중앙회 벤처기업위원회 위원,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 운영의위원, 의료산업 선진화위원회 위원, 한국바이오벤처협회 부회장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