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김동식씨(42)는 고객사 제출용 디자인 시안이 외부로 빠져나가 큰 곤욕을 치렀다. 디자이너가 밤새워 작업하고 수정하느라 수없이 프린팅한 출력물이 외부로 노출돼 다른 업체에서 같은 디자인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면서 디자이너 업무와 관계없는 직원도 사내 어디에서나 문서를 뽑을 수 있어 발생한 일이었다.
#장면2.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라영화씨(30)는 하루에 수십통씩 들어오는 스팸 팩스가 늘 골칫거리다. 밀려들어 오는 스팸 팩스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전화번호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팩스로 정작 받아야 하는 중요한 문서를 받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전혀 필요 없는 스팸 팩스를 출력하기 위해 낭비하는 종이와 잉크 가격도 만만치 않다.
기업이라면 한번쯤 경험해 본 일이다. 전산과 문서에 관한 보안 문제가 기업 사무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종이와 잉크 낭비를 초래하는 스팸 팩스에서 장비 자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출력물 유출, 네트워크 해킹으로 인한 기업 주요 정보 노출까지 그 사례도 무궁무진하다. 유우종 한국HP 이사는 “사무 환경에 관한 컨설팅 의뢰를 받아 보면 의외로 문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경영에 막대한 피해를 본 기업의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안 목적으로 출력 문서를 직접 관리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나마 정보 보안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기업에서 문서 보안 관리 상태는 걸음마 단계다. 이마저도 대부분 온라인상의 데이터 보안에 집중하고 있다. 문서와 파일을 일정 기간 열 수 없거나 외부 유출을 방지하는 DRM을 탑재해 정보 유출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컴퓨터 내 파일과 콘텐츠는 보호할지 몰라도 출력 문서에는 무방비 상태다. 자칫 사무실 내 출력 기기에 쌓여 있는 기획서·설계도·제안서 등이 외부로 유출돼 경쟁 기업에 넘어간다면 기업은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변화된 사무 환경은 기업의 사무기기 구매 패턴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업은 솔루션보다는 하드웨어 자체가 구매 포인트였다. 하드웨어 사양을 중심으로 제품을 구입하고 애플리케이션은 기본 또는 번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하드웨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출력 환경의 효과적인 관리와 개선을 이룰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최근 14개 계열사를 포함, 그룹 전체의 출력 시스템을 전면 업그레이드한 김명규 동국제강 그룹 팀장은 “출력량이 점점 늘어가고 출력 문서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보다는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먼저 고려하고 장비를 도입하는 형태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기기 업체도 하드웨어 성능 못지않게 애플리케이션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HP는 최근 출시하는 디지털 복합기에 스팸 차단과 작업 보존 기능을 탑재했다. 스팸 차단 기능은 사용자가 차단할 수신 팩스 번호를 복합기에 입력하면 번호를 저장해 해당 번호에서 팩스를 보내면 문서가 인쇄되지 않아 종이와 잉크를 절약할 수 있다. 또 작업 보존 기능은 개인별로 패스워드를 부여해 중앙 서버에서 인증을 받아야만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인쇄·복사·스캔·팩스 등 필요한 기능을 중앙에서 제어할 수 있는 제어판 잠금 장치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