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일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4∼5년 전이었다. 트라이글로우픽처스를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프리스톤테일’이라는 3D 온라인게임을 개발해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었다. 서초동 게임하이 사옥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는 활력이 넘쳐 보였고, 눈빛 또한 여전히 강렬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의 내면은 크게 변해 있었다. 트라이글로우픽처스 사장에서 게임하이를 비롯해 MSC코리아 등 2∼3개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게임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도전자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서든어택’이라는 최고의 1인칭슈팅게임(FPS)과 ‘데카론’이라는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견기업 CEO가 돼 있었다.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대유베스퍼를 인수하면서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 선언도 했다. 그동안 실질적인 오너이면서도 전면에 나서기를 꺼렸던 그에게는 가장 큰 변화다.
◇유학비용 벌기 위해 사막으로
그와의 대화는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사막에서부터 시작됐다. 1982년도. 1년도 채우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직장생활 이야기였다.
“직장생활 보다는 유학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1500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드라구요.” 그가 사우디로 날아간 것은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얘기를 듣자니 해외에서 근무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데요. 건설사에 입사해 사우디 근무를 지원했어요.”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어투로 그는 26년전의 사막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조수로 데리고 있던 태국인을 보고 유학에 대한 꿈을 접었어요.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대학 석사였는데 하는 일이...” 유학에 대한 실망감에 젖어들 당시 현지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이 사업을 해 볼 것을 제안했다. 처음부터 직장생활에 미련이 없던 그는 흔쾌이 응했고, 사우디 근무 9개월만에 사표를 던졌다.
그가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3년 12월 태국에서 였다. C&M 브라더스라는 건설사 에이전시 업무를 하는 회사였다. 사우디에 근무하면서 사귄 친구들이 대부분 컨설턴트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잊지 못할 첫 개인사업이었다.
◇KFC 마스코트 통해 향료에서 게임으로 워프
그가 게임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더 기발했다. 향료가 장난감과 연결되고, 장난감은 다시 캐릭터로, 캐릭터는 다시 게임으로 도약하는 순서였다.
오퍼성을 내고 무역업을 하며 세계 각지를 뛰어다니던 그는 향료사업으로 정착했다. 그 계기도 일본 친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향료사업으로 큰 성공을 일구어 냈다. 그가 제공한 원료로 만든 ‘치토스’가 대박을 치면서 처음으로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바로 오늘의 삼조셀틱이다.
하지만 그는 향료회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10여년간 향료회사를 했어요.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게임을 선택한 것 같아요.”
패스트푸드점 등에 향료와 경품용 장난감을 공급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KFC 마스코트인 샌더스 영감이었다. 곧바로 캐릭터 사업에 대한 구상이 그려졌고,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결국 게임사업으로 연결됐다. “바로 게임 개발자들을 모았죠. 그 때 개발한 게임이 바로 ‘프리스톤테일’이었어요.” 지금은 예당 온라인에 매각, 게임하이와는 무관한 게임이 됐음에도 그가 아직도 ‘프리스톤테일’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장 중시하는 경영요건은 ‘사람’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단순명료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창업을 하고 사업 아이템을 변화시켜오면서 고민이 없었느냐고 질문해 봤다. “고민요? 안해요.” 돌아온 그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고민해봐야 항상 마이너스 효과만 가져온다는 것이다.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데 투자하는게 백배 나아요.” 지난 26년간 사막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비즈니스 인생 경험이 만들어 준 실전철학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친분을 나눴던 친구들의 도움을 가장 값지게 생각하고 있었다. 향료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게임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도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게임하이의 백승훈 전무와 MSC코리아의 최진욱 사장”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게임과 콘텐츠 서비스 분야를 맡긴 인물들이었다.
그는 앞으로 콘텐츠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할 계획이다. 테마파크 또는 엔터테인먼트 랜드나 빌딩 형태다.
그는 “몇년째 추진하고는 있는데 굉장히 어렵다. 개인이 도전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같다”면서도 “온·오프라인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일하고 즐길 수 있는 유비쿼터스 개념이 앞으로의 방향이라고 본다”고 자신한다.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훌륭한 게임회사 만들 터
“국내 시장은 너무 좁아요. 아무리 잘해도 금방 한계를 느끼죠.”
김건일 회장은 다시 세계시장으로 뛰쳐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준비도 한창 진행 중이다. 우선 내년에는 홀딩 컴퍼니를 세울 예정이다. 이를 중심으로 게임하이와 MSC코리아 및 얼마전 우군으로 확보한 일본 IPTV 1위업체인 네오와의 협력을 통해 3각편대를 구성키로 했다. 내년에는 지난 3년간 개발해 온 3개의 신작게임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벌써 10년째 게임사업을 하다보니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며 “내년 쯤에는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일들이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하게 펼칠 수 있는 사업이 없었다는 게 고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그의 눈높이는 항상 세계시장에 맞춰져 있던 듯 했다. “향료사업을 할 때도 국내만 보면 10명이면 될 연구소 인력을 20여명이나 뒀었죠.” 언제고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들이었다.
“게임하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개발사가 될 때까지 뛰어볼 겁니다. 세계적으로 진짜 훌륭한 게임을 서비스 한다는 얘기를 듣는게 목표예요.” 그가 밝힌 포부다.
◇김건일 회장은
서울 토박이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12세의 어린나이 때부터 돈벌이를 시작한 대표적이 자수성가형 CEO다. 부친이 사업에 실패해 초등학교 졸업 후 1년을 쉬었야 했다. 이 때부터 그는 1년간 매일같이 마포와 신촌을 오가며 하루종일 신문과 일일공부를 돌렸다. 새벽에는 조간신문, 낮에는 일일공부, 저녁에는 석간신문을 돌렸다. 고등학교 재학중에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대학시절에는 숙식을 학교에서 해결해가며 학원강사까지 겸했다.
이같은 고생은 그를 실전형 CEO로 무장시켰다. 태국에서 첫 회사를 설립할 때도 그는 맨손이었다. 현지에서 9개월간 사귄 친구들이 전재산이었다. 무역업을 하면서 전쟁의 틈바구니에 있는 중동지역에 물자를 공급하기도 했다. 삼조셀틱의 전신이 된 향료회사를 설립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김순기기자 soon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