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명예훼손 관련 댓글을 임시조치하지 않을 경우 처벌 조항 신설 등 50개 세부대책을 담은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다. 18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송망 차단까지도 가능한 강력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경찰은 인터넷 전담대응팀을 구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검찰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 신설했다. 법원은 포털의 명예훼손 게시글의 사전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판결을 내렸다. 국회의원들은 기존 법으로는 안 되겠다며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강력한 인터넷 관련 법안 발의르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포화를 퍼붓고 있는 상황”으로 표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 들어서 새롭게 생겨난 이런저런 인터넷 규제만 10건 이상이다. 대한민국 인터넷은 지금 ‘규제 잔치’를 벌이고 있다.
◇파급력 커진 인터넷, 규제는 필요=최근 2∼3년 새 인터넷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문제나 명예훼손 등이 빈번해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사이버 침해사고는 2003년 1323건에서 지난해 7588건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 방통심의위원회가 시정 요구를 내린 불법·유해성 정보 1만8185건도 40% 이상이 네이버·다음 등 10대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넷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근거들이다.
적절한 규제는 역기능을 정화하고 산업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심재철·정청래 의원 등이 지난해 “포털이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배치 및 제목 수정 등 유사 편집권을 발휘하면서도 명예훼손이나 오보와 같은 기사 관련 문제 발생 시 책임은 지지 않는다”며 신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포털이 자율 책임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주요 포털기업은 이용자위원회, 미디어책무위원회 같은 별도 조직을 꾸려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등의 피해확산 방지 노력을 벌이고 있다. 공정위도 구글이 국내 인터넷 기업과 광고서비스인 ‘애드센스’ 계약 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등의 불공정한 약관을 바꾸도록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규제의 순기능이다.
◇쏟아지는 규제…적정성은 의문=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규제는 적정 수준을 넘어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다. 현행 인터넷 규제 법안은 정통망법·저작권법을 양대 축으로 전기통신사업법·정보화촉진법·전자상거래법·전자서명법 등 10개 가까운 법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여기에다 형법·민법·상법·공정거래법·공직선거법·행정법과 청소년 유해물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법안 등을 감안하면 인터넷 관련 적용 가능 법은 20개도 넘는다. 해외와 비교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더욱이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회의원의 인터넷 규제법안 발의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김영선 의원에 이어 홍정욱·진성호 의원 등이 인터넷 규제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며 “최소한의 법적인 요건이나 합리적인 문제의식도 갖추지 않은 채 일단 발의하고 보자는 식의 움직임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다 보니 과잉 규제, 땜질식 규제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려는 실명제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와 효과 면에서 다르지 않은데도 되레 표현의 자유만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현재 제도로도 댓글 문제가 발생했을 때 90% 이상의 행위자 추적이 가능하다”며 “굳이 실명제를 고집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실명제를 요구하면서도 한쪽에서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말라고 하거나, 악성 댓글을 단 사람보다 댓글이 실린 사이트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규제라는 반응도 나왔다. 최경진 굿모닝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인터넷 규제는 당위성 정책만 반복하기 때문에 정책 리스크가 너무 큰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철학 있는 규제, 합리적 규제 고민해야=전문가들은 더 이상 땜질식 규제나 과잉 규제가 아니라 규제 철학이 분명한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인터넷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법안을 우후죽순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법원이 기존 법을 창의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해 질서를 잡아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이용자와는 상당히 괴리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중태 마이엔진 이사는 “해외의 인터넷 활성화 정도는 더디지만 정부의 인터넷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 규제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 정부도 다양한 경로와 공론장을 통해 인터넷에 대한 이해를 선행한 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적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K리서치가 네티즌 6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0명 중 6명은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강도에 대해서는 52.7%가 ‘중간 수준’의 규제(10점 척도의 4∼7점)를 원했다. 전체 평균도 4.3점으로 나타나 일반인도 강한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장기능 살리려 자율규제 우선시
최근 국내에서 인터넷 규제가 강화되면서 어떤 방식의 규제 모델이 더 적합한지를 놓고 논의가 일고 있다. 민간을 중심으로 한 자율 규제에 중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정부에 의한 강력한 통제 모델을 따를 것인지에 따라 인터넷 산업 구조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권헌영 광운대 법대 교수는 “해외 선진국은 인터넷을 시장과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대부분 자율규제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규제모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규제 방향은 일단 정부 규제(법적 규제)에 집중됐다. 정부의 각 해당부처가 직접 나서 관련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 규정을 제시하는 등 중앙집중식 규제가 주를 이룬다. 정부 규제는 일사불란하고 사회적인 학습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이점은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산업이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지나쳐 왜곡 현상을 낳고, 규제 순응형 기업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 또 너무나 많은 사전 규제는 새로운 사업자에게 진입장벽이 돼 산업 생태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부작용 때문에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자율 규제를 우선시한다. 가급적 규제를 푸는 것이 원칙이며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콘텐츠 규제도 최소화한다. 야나기시마 사토루 일본 총무성 인터넷기반기획실장은 “인터넷 산업은 어느 나라나 직접 규제가 어려운 분야”라며 “정부가 규제를 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연방통신위원회가 정책과 규제를 동시에 하지만 콘텐츠 규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대신 인터넷콘텐츠등급협회(ICRA), 인터넷 감시단체인 사이버에인절스 등 업계와 시민단체의 자율 규제는 매우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유럽연합(EU)도 자율규제 원칙 아래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대부분 콘텐츠 자율규제를 하고 있다. EU차원에서 5000만유로를 지원해 지난 2005년 ‘세이퍼 인터넷 플러스’를 발족시켜 핫라인, 필터링, 대중교육 등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 총무성 역시 인터넷 시장 기능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6월 10일 통과된 ‘유해사이트 규제법’은 업계 협의와 자율로 탄생한 법안이다.
그러나 선진국도 정부에서 엄격하게 하는 규제가 있다. 바로 미성년자와 아동에 관한 보호다. 미국은 2000년 아동 온라인 보호법을 통해 유해 콘텐츠를 차단하고 공립학교와 공공도서관의 컴퓨터에 유해 콘텐츠 접속 차단장치를 설치하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의무화했다. 프랑스도 아동 포르노 유통 방지에 대한 정부 규제는 엄격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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