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다. IMF 직후인지라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지금을 IMF보다 더한 불경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업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공룡 기업들마저 도산이라는 아픔을 겪었던 당시다. 돌이켜보면 정말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남겨줬던 시기기도 하다.
내 개인에게 그때는 바로 샐러리맨의 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시점이다. 그 시대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어떻게 용기를 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글과컴퓨터에 이사로 재직 중이던 나는 ‘벤처’의 생동감에 푹 빠져 있었고, 이내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무수히 반대했다. 누가 이런 위험한 결정을 찬성할 수 있었겠는가. 나름 비전이 있어 보이는 직장에, 그것도 젊은 임원이라는 호칭은 그 당시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IMF 직후라니…. 반대로 인해 넘치던 의욕이 꺾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나에게 힘이 돼 준 친구가 있었다. 마음먹었다면 잘하라며 격려해 준 그 친구. 그 친구의 믿음이 없었다면 힘들 때마다 좌절을 겪고 10년 전의 결정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가 나에게 믿음을 보여주며 건넨 선물이 있다. 어디에 가든 항상 챙기는 ‘카르티에 볼펜’이 바로 그것이다. 나에게 그 볼펜은 늘 내 옆에서 나에게 굳건한 신뢰를 보여주는 그 친구기도 하다. 해외 출장을 갈 때에도 고객을 만날 때에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이 볼펜이다. 그 친구는 이 볼펜과 함께 얼마간의 사업 자금도 빌려주며 처음 사업을 시작하던 나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이 볼펜은 당시 사업 자금만큼이나 나에게 큰 의미다.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다 보니 나는 볼펜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도 함부로 쓰지는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중요한 계약서를 쓸 때, 굳은 결심을 글로 남길 때 친구가 선물해 준 그 볼펜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잉크 한번 갈지 않았다.
처음 내가 창업한 회사는 TSKG. 지금은 콘퍼런스·전시회나 기획 등을 주로 하고 있지만 창업 당시에는 다른 벤처의 가능성을 찾아 투자하고 컨설팅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벤처 인큐베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창업 직후부터 좋은 벤처를 찾아내는 일에는 늘 이 볼펜이 함께했으며, 현재의 TSKG 사업 모델로 사업 방향을 바꾼 후에도 굵직굵직한 계약은 이 볼펜의 사인을 거쳤다. 또, TSKG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블랙덕소프트웨어의 한국 지사인 블랙덕소프트웨어코리아를 설립할 때와 리눅스파운데이션 한국 대표를 지낼 때에도 이 볼펜은 늘 함께했다.
앞으로도 이 볼펜은 나의 소장품 1순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나에게 든든한 힘이 돼주는 그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소중한 0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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