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터넷](4)아무도 인터넷을 탓하지 않았다- 해외사례

[新인터넷](4)아무도 인터넷을 탓하지 않았다- 해외사례

" 정부는 사업자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위축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죠.”

 런던에서 만난 영국 인터넷 기업인 조 코헨 시트웨이브닷컴 CEO의 말이다. 전자신문이 지난 6월 초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4개국을 취재하면서 만난 현지의 인터넷 기업들은 하나같이 “정부 규제를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표현은 달랐지만 메시지는 동일했다. ‘정부는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사업자가 최소의 의무만 다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자도 기업의 기본적인 책임 이행에 대해서는 모두 적극적이다. 사업자는 스스로 책임을 이행하고, 정부는 이를 믿고 불필요한 책임은 부과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 규제’가 정착된 듯했다.

 ◇“내용 규제는 거의 안 받아”=온라인 티켓 재판매 사이트인 시트웨이브닷컴 코헨 사장은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아동 성인물 같은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면 영국 정부는 유해 콘텐츠를 업로드한 개인에게 벌금을 부과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영국은 인터넷 사업하기에 매우 좋은 나라”라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설립된 프랑스 동영상 콘텐츠 기업인 vpod.tv의 로드리고 슐츠 CEO도 비슷한 견해다. “프랑스는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문제가 있을 때, 유해 콘텐츠의 배포자가 생기지 않도록 피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둔다”며 “기술이나 플랫폼 자체를 문제삼아 봐야 근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P2P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지만 P2P는 기술일 뿐 마약처럼 근절하거나 단속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며 “기술이 합법적인 용도로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국의 오프콤과 프랑스 ARCEP 등 인터넷 규제기관이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은 한다=그러나 이들이 인터넷상의 부작용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일정 수준의 자율 규제를 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에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가입자 700만명을 보유한 SNS 기업인 일본의 니완고는 폭력, 성인물 등에 대한 자체적인 룰을 만들어 필터링을 하고 있다. 항의가 접수되면 업로더에게 경고를 하고 반복적으로 악성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사용자는 업로드 자체를 막고 있는 등 각별히 신경을 쓴다. 스기모토 세이지 니완고 CEO는 “최대한의 자율적인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트웨이브닷컴도 유해하거나 불법적인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콘텐츠가 업로드되면 자체적으로 경찰의 협조를 얻어 삭제한다. 그렇다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게시물을 함부로 걸러내지는 않는다.

 ◇정부 규제 수준에 대해서는 일부 시각차=그러나 정부 규제 수준에 대해서는 약간의 온도차를 드러냈다. 영국의 코헨 시트웨이브닷컴 대표는 “영국 정부는 만약 불법적인 행위가 적발되면 아무리 개인일지라도 소송을 통해 강력하게 제재한다”며 “그러나 사업자에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주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의견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슐츠 vpod.tv 대표는 정부의 역할을 좀 더 기대하는 쪽이다. 그는 “아무도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기본 프레임워크를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정부 규제의 순기능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프랑스 정부의 규제는 충분히 합리적이기 때문에 산업과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최순욱기자 choisw@

◆인터넷규제 선진 4개국은 어떻게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4개국 현지 취재 결과 각국 정부는 사업자 자율에 무게 중심을 뒀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가 인터넷 규제를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문법인지 관습법인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지에 따라 규제의 초점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은 규제철학이 확고했다는 것이다. 경쟁 지지, 이용자 보호, 산업 육성 등 정해놓은 규제의 기본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이든 사용자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예측이 가능해져 규제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미국·영국, 부작용도 시장에서 걸러=미국과 영국은 시장주의 국가답게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는 규제에서 배제한다. 부작용조차도 시장에서 걸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난 14일 미국 연방법원은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e베이 사이에서 벌어진 모조품 판매 분쟁에서 “온라인에서 상표권을 지킬 의무는 티파니 측에 있다”고 판시했다. 티파니가 모조품으로 의심되는 상품을 통보하자마자 판매 목록에서 해당 상품을 삭제하려고 한 e베이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다.

영국은 미국보다 규제 최소화 원칙에 더 철저하다. 규제기관인 오프콤은 기존 규제도 시장에 필요하면 과감하게 없앤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당초 티켓 리세일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는데 온라인 티켓 사이트가 나오면서 아예 이 규제를 없앴다. “시장 경쟁이 활성화되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소한의 감독하에 이뤄지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자유로운 교환’, 즉 ‘자유시장’과 ‘경쟁’이라는 규제 철학이 배어 있다.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 퍼블릭놀리지의 변호사 셔윈 시는 “과도한 규제를 반대하지만 공정한 경쟁 상황에서 기업이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정부의 기본 규제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예측 가능성에 무게 중심=프랑스는 온라인도 기존 규제 틀을 준용한다. 컨설팅 기업인 지텍스의 장 뤼크 페티 부사장은 “프랑스는 인터넷을 별개로 보지 않고 기존의 원칙을 똑같이 적용해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법원은 지난 6월 30일 e베이에서 가짜 가방과 향수 등이 판매됐다는 이유로 e베이가 루이비통(LVMH)에 4000만유로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과거 판례를 검토하면 프랑스에서는 이미 이 같은 판결이 예상됐다.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와 유통자가 일정 부분 져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프랑스는 수십년 전부터 나치와 관련된 물품의 판매 및 유통 모두를 금지하고 있다. 2001년 야후 경매 사이트에서 나치 물품 거래가 문제가 되자 파리 대배심이 ‘미국 야후’를 프랑스 법으로 제재할 정도였다. 온라인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일 행위에 대한 동일한 처벌로 규제의 예측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일본 ‘사업자를 내버려둬라’=지난 6월 3일 일본 자민당과 민주당은 18세 미만 청소년이 휴대폰으로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필터링 서비스’를 의무화했다. 전형적인 하향식 규제로 보이는 이 법안은 사실 철저히 사업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당초 일본 의회는 유해 사이트를 정부가 직접 심사하고, 청소년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내용을 담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야후, MS, 라쿠텐 등 사업자가 이에 반발하며 유해 사이트 관련 교재 공동 제작 등 자율적인 대응 방안을 내놨다. 한마디로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 둬라’는 것.

결국 일본 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했다. 5월 1일 업계가 자체적으로 구성한 독립 기관 ‘모바일 콘텐츠 심사·운용감시기구(EMA)’에 필터링에 대한 판단을 위임하기로 법에 명시한 것이다. 일본의 규제철학은 사업자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렛잇비(Let it be)’인 셈이다.

◆에드 블랙 CCIA 회장 인터뷰

“인터넷 사업자(ISP)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지식재산권 같은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지난 6월 초 워싱턴 현지에서 만난 에드 블랙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회장은 ISP에 대한 규제의 의미를 묻자 대뜸 ‘위험하다’는 반응부터을 보였다. CCIA는 MS, 구글, 야후 등 굴지의 IT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단체. 통신, 인터넷, 컴퓨터, 지식재산권, 개인정보보호 등 각종 산업과 사회적 이슈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업을 대변하는 CCIA 회장이 ISP 규제의 위험성을 ‘기업 위축’이 아닌 ‘인터넷 자유 위축’으로 본 것은 의미심장하다.

“ISP나 캐리어가 서비스 위에 있는 콘텐츠에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당연히 이들은 모든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분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검열이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ISP나 캐리어가 사용자가 하는 일에 대해 최소한의 관여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랙 회장은 우편 서비스나 철도 서비스를 예로 들어 이용자 행위를 사업자가 책임지는 것은 어렵고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진단했다. “우편서비스 사업자는 편지 내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물론 철도 사업자가 강도나 납치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타는 사람을 일일이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업자 통제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CCIA는 인터넷에 대한 ‘무규제’를 주장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서의 공정한 경쟁, 상호운영성과 개방성,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규제는 인터넷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게 됩니다. 그러나 틀을 제공한다고 해서 세부 내용까지 강제하는 것은 문제죠.” ISP의 면책규정을 담은 미국 통신품위법(CDA)의 철학과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그는 최선의 선택이 기업과 이용자의 자율규제라고 말한다. “물론 인터넷에서 저작권이나 포르노그래피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죠. 하지만 이미 수십억명의 사람이 인터넷에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검열 등 통제를 싫어하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율규제가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켜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참여해 역동적이고 개방된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장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죠. 만약 강제 규제를 하게 되면 시장 자율 시스템은 기능하기 어려워집니다.” 시장 활성화가 자율 규제의 전제 조건이라는 그의 말은 인터넷 역기능을 강한 정부 규제로 풀어보려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참여와 제보 바랍니다

‘新인터넷’은 전자신문이 국내 인터넷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입니다. △인터넷 규정 △규제 △저작권 △개방과 공유 △글로벌 등 각종 인터넷 이슈와 담론에 대해 취재·연구·분석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합니다. 기획기사, 출판 및 보고서, 콘퍼런스 등의 결과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이번 기획에 관심이 있는 개인 및 기관, 학계·연구계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제보 부탁드립니다. 02)2168-9492, etrc@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