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50년, 새로운 50년] 김영온 前 노비타 사장

[전자산업 50년, 새로운 50년] 김영온 前 노비타 사장

 아시아 최빈국 대한민국이 수출 100억달러를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 시장에서 남 모를 눈물과 땀을 흘렸던 수출 역군들 덕이다. 한국 컬러TV 수출의 개척자로 꼽히는 김영온 전 노비타 사장(61)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수출 100억달러 달성해인 1977년. 그해 4월 전자손목시계 판매를 위해 파나마로 들어가 있던 김 전 사장은 현지에서 컬러TV의 수출 루트를 개척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삼성전자가 해외 테스트 마켓으로 파나마를 선정한 것이었다. 파나마의 전원시스템 및 방송시스템이 미국 시장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난감했다. 1년 넘게 해외에 머물며 영업해 온 그가 한국을 떠나올 때는 삼성의 컬러TV가 개발도 되지 않았다. 또 파나마에 삼성전자 흑백TV가 수출된 적은 있었지만, 일본의 브랜드를 달고 있었지 삼성전자 브랜드는 아니었다.

 김 전 사장는 “당시 내 손안에 있던 것은 달랑 컬러TV 카탈로그 한 장뿐이었다”고 회고했다. 파나마를 누비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시장과 파나마시티의 시내 판매상을 찾아다니며 판로를 만들려 했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회사도 모르고 제품도 없는데 무슨 거래를 하느냐는 당연한 답변이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던 중, ‘마두로 인터내셔널’이란 간판을 보고 또 한 번 시도를 했다. 다짜고짜 사장실로 밀고 들어가자 40대 유대인 사장이 깜짝 놀라며 누구냐고 물었다.

 “삼성전자 세일즈맨 김영온이오. 우리 회사의 컬러TV를 당신에게 팔고 싶소. 일본 제품을 많이 쓴다고 들었소. 그러나 우리 제품이 일제만큼 우수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소.”

 유대인 사장이 답했다. “나는 한국도, 삼성도 모른다. 당신네의 TV는 구경도 못해봤다. 물건을 내놓고 말해라.”

 김 전 사장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샘플을 가져오다 공항에서 통관에 걸려 가져오지 못했소. 우리 제품은 일본의 마쓰시타와 기술 제휴로 생산하니 안심해도 좋소.”

 그러자 사장이 호기심을 보이며 가격을 물었다. 대당 212달러를 불렀다. 당시 일본 제품은 240달러가량. 더 많은 당근이 필요했다. 그는 “팔리지 않거나, 문제가 있으면 반품을 책임지겠다. 그리고 당신에게 삼성 컬러TV의 파나마 판매 독점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망설이던 사장은 1차분으로 컨테이너 1개분을 거래해 보자고 말했다. 한국산 컬러TV의 해외 수출은 이렇게 시작됐다.

 류경동기자 nin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