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산업·기술을 총괄하는 정부 산하 공기관에 대한 통폐합 작업이 난항이다. 정부는 이달 말께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기관부터 통합할 방침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어느 기관을 통합 주체로 할 것인지 정하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 통폐합에 대한 정부부처 간 이견도 나오고 있으며, 대상 기관의 반발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숫자 줄이기식 통합 논리가 자칫 기관 업무 특성을 도외시한 밀어붙이기 식으로 흘러 장기적인 업무 공백은 물론이고 산업·기술적으로 꼭 필요한 조직과 예산이 와해되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비판론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
3일 정부와 관계 기관 등에 따르면 지식경제부가 대표적인 통합 성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해 온 옛 정통부 산하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옛 산자부 산하 한국전자거래진흥원의 통합 논의가 사실상 원점부터 재검토되고 있다.
두 기관의 업무 특성이 이질적이어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의문시되는데다 통합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도 좀처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경부 고위 간부는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아직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통합 방식에 대한 정부부처 간 견해차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산업기술 R&D 지원기관에 대해 산업별 분류를 없애는 대신 기획(재정지원)과 평가(확산) 기능 등으로 나눠 ‘헤쳐모여’ 식 통합을 하겠다는 밑그림을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산업기술재단, 산업기술평가원, 기술거래소, 부품소재산업진흥원, 정보통신연구진흥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 등을 특성에 맞춰 기획과 평가 2개 기관으로 통폐합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통합 작업을 해야 하는 지경부는 전문분야가 서로 다른 기관을 일률적으로 나눠 통폐합하는 게 쉽지 않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또 다른 지경부 고위 간부는 “예산 당국의 2개 기관 압축안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알려졌다”면서 “너무 줄이면 특정 기관만이 비대화하는 문제가 있고, 업무특성도 살릴 수 없는 우를 범할 수 있어 적정 개수를 유지하자는 게 우리 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통합논의가 부진해지면서 비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에너지 관련 기관의 통합은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나 초대형 기관이 전문 업무를 이전처럼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경제성 논리에 갇혀 무조건 큰 기관이 작은 기관을 흡수하는 방식의 통폐합은 향후 ‘제식구 감싸기’와 같은 갈등으로 이어져 업무 시너지를 헤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합 논의가 오가는 A기관의 간부는 “요즘 직원들의 무기력함이 피부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며 “기관 통폐합의 궁극적인 목표인 업무 혁신 및 추진력 향상을 이렇게 해서 이뤄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B기관 본부장은 “기관 설립의 근거가 되는 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필요성이 적시됐다면 그 로직(논리)에 따라 순리적으로 통폐합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무조건 수치 논리만 앞세우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진호기자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