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죄악에 종지부를 찍을 내 주먹을 사라!’
1940년. 거대한 어둠의 조직이 그 세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최정예 특수 요원들의 명단이 담긴 국가 일급 문서와 여성 비밀 요원 ‘금연자’가 작전 수행 중 사라진다. 이에 임시정부 수장들은 감춰뒀던 마지막 비밀 병기를 꺼내 든다.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채 정의를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총구를 겨누는 남자. 바로 다찌마와 리(임원희)다.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 다찌마와 리는 영화 초입부터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국경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승객의 돈을 빼앗던 국경의 살쾡이(류승범)를 앉은자리에서 한손에 제압한 그는 한마디 날린다. “우리 사이에 굳이 통성명은 필요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이다.
통성명이 필요치 않은 남자, 다찌마와 리가 이번에는 지옥행 편도 기차표를 예매하고 우리를 찾아왔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지난 2000년 인터넷에서 소개돼 129만번이라는 어마어마한 조회 수를 기록한 ‘다찌마와 lee’의 후속작에 해당하는 작품. 그러나 전편의 인기를 등에 업은 아류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60년대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촌스러움의 미학은 여전했고 배꼽을 잡게 하면서 우리를 무장해제하는 다찌마와 코믹 본능은 더욱 강해졌다. 영화를 보는 순간, 당신은 그가 화려한 미사여구와 현란한 몸동작에 120분이 짧다고 느낄 것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극대치로 다다른 촌스러움과 뻔뻔함이다. 특히, 촌스러움은 지옥행 열차를 출발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추동체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 곳곳에 배치한 의도적 어설픔은 시종일관 실소를 자아내게 하며 우리를 ‘류승완의 촌스러운 세계’로 정확히 인도한다. 40여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후시 녹음과 ‘조국과의 사랑을 배신한 넌 간통죄야’ ‘너희 같은 천인공노할 무리들이 타고 갈 열차표다’ ‘차가운 흙으로 만든 요에 구름 이불을 덮고 잠들게 해주마’라는 촌발 날리는 대사. 상하이, 만주, 펜실베이니아, 스위스 등 5개국 6개 도시를 올 로케이션했다고 말하면서 성수대교(한강)와 고려대학교(미국), 용평스키장(스위스), 영종도(만주)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화면 등. 이 모든 것이 관객을 위한 류승완의 팬 서비스다.
뻔뻔함은 또 어떠한가. 일본인과 중국인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사가 자막을 읽지 않아도 쏙쏙 귀에 들어오는 신선한 충격. 이상하다. 내가 외국어를 알아듣는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우리가 초등학교 때 써먹던 어미만 약간 바꾼 유사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인가. 해답은 오는 14일 극장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런 뻔뻔함과 촌스러움은 다찌마와 리에 이르러 정점을 확인한다. 첩보계의 검은 꽃 마리(박시연)와의 삼각 관계를 질투하는 금연자에게 ‘내가 아는 삼각형은 삼각 김밥뿐이야’라고 닭살 멘트를 날리는 것도 모자라 영화에서 그는 잘생긴 쾌남이자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당당하게 활동한다. 제작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방한’은 의기가 강해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고 기운이 차고 넘치는 모양새. 그러나 그는 지금의 잣대로 보면 호방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럽고 ‘오버’ 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물론 다찌마와에게는 세간의 평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폼생폼사’ 형 인물이 그다. 심지어 싸움이 끝난 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이다. 우리가 다찌마와에 열광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뻔뻔하고 촌스럽지만 당당한 그. 우리가 꿈꾸는 내일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