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특허를 두고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사례는 지난 2006년 10월에도 있었다. 당시 특허법원은 미국계 석유회사인 A사가 중국계 화학 업체 B사를 상대로 낸 특허무효청구소송에서 “원고 특허의 신규성 및 진보성이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A사의 특허를 두고 2005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다르게 판단을 한 상태였다. 서울고법은 당시 A사가 국내 화학업체 C사를 상대로 낸 특허침해금지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사의 특허는 신규성이 없고, 신규성이 인정돼도 진보성이 없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왜 이런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특허 무효 사건과 특허 침해 사건의 이원화된 체계 △명확한 업무 구분의 부재에 그 이유가 있다.
대법원은 지난 91년부터 침해 사건 담당 법원이 특허발명의 신규성 유무를 심사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진보성 유무는 판단할 수 없다는 방침을 보였다. 대법원에 따르면 “특허법은 특허가 일정한 무효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별도로 마련한 특허의 무효심판절차를 거쳐 무효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특허는 일단 등록이 된 이상 심판에 의해 특허를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유효한 것”이라며 “법원이 특허의 무효심판절차가 아닌 다른 소송절차에서 그 전제로서 특허가 당연히 무효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해왔다.
그러나 그 후 대법원은 2004년10월 특허권침해금지가처분 등 사건에서 “특허 무효 심결이 확정되기 이전이라도 특허권침해소송을 심리하는 법원은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명백한지를 판단할 수 있고 심리한 결과 당해 특허에 무효사유가 있는 것이 분명한 때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금지나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침해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이 특허 무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침해사건을 담당하는 일반 법원들은 침해사건과 관련한 심판이나 심결취소소송이 계속 중이면 특허무효를 인정하는 특허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선고해왔다. 침해 사건을 맡는 법원이 특허법원을 따라야 하는 법률적인 근거는 없지만 이는 관행처럼 내려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침해사건을 담당한 일반 법원들은 2004년 대법원 판결 이후 재판 지연 등의 이유를 들어 종종 특허무효가 확정되기 전에 특허 여부를 독자적으로 심사해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부정하는 판결을 하고 있다. 파이컴 사건도 바로 이런 사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2004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 침해 법원이 특허 유무를 판단하도록 태도를 변경한 것이란 견해와 그렇게 볼 수 없다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견이 있을수록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