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아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 일을 맡아서 해야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장기수 뉴인텍 사장(50)이 가업인 필름콘덴서 제조업을 이은 배경은 이렇다.
◇입사 6개월 만에 경영을 맡다=대학을 졸업하고 극광전기(뉴인텍의 옛이름)에 입사했다. 회사를 다닌 지 6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었다. 1981년이었고 당시 스믈네살이었다. 언젠가 이어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경영 경험도, 기반도 없었다. 당장 주위에선 걱정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냈다. 다행히 사촌형님이 공동대표를 맡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젊은 나이에 경영진 자리는 부담스러웠다. 영업을 하더라도 나이에 비해 지위가 높아 담당자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 쉽지 않았다. 장 사장은 “당시만 해도 ‘나이에 걸맞게 지위가 낮았으면 좀더 가깝게 지냈을 것’ 같은 생각을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오로지 필름콘덴서 한 우물만=장 사장이 필름콘덴서 하나만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선친도 기술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집안에 장인정신을 이어받는 일종의 ‘분위기’가 있었다. “일본에 가서 보면 전통 있고 한 분야에서 기술력이 굉장히 뛰어난 회사가 있잖아요. 전 그런 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갈 때마다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반성하는 시간도 갖게 됩니다.” 장 사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업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지금도 그런 기업을 만들고 싶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실 1990년대 중반에 정보통신 분야에 잠깐 관심을 둔 적이 있다. 그러나 곧 필름콘덴서가 갈 길임을 깨닫고 되돌아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장 사장이 사과 얘기를 꺼냈다. “똑같은 사과 두 개가 있어도 남이 갖고 있는 사과가 더 빨갛고 맛있어 보이는 게 보통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죠. 다른 유망한 사업이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본인이 갖고 있는 기술로 뭔가 이룰 것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사과를 탐내거나 할 일이 아닙니다.” 장 사장은 “오랫동안 노하우가 있는 사업분야에서도 세계 1등을 못했는데 다른 것을 탐낸다면 그건 사기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뼈아픈 구조조정=외환위기 때도 별 구조조정 없이 잘 견뎌낸 뉴인텍에 어려움이 닥쳤다. 2006년 무렵이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파고든 시기다. 제대로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었지만 싼 값으로 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당시에 CRT모니터에 들어가는 고압 콘덴서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말 그대로 회사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적자를 크게 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발생했다.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몇 개월 이상 매출이 일어나지 않았고 적자폭이 커졌다. 그래도 잘 견뎌 지금은 뉴인텍만이 이 사업을 한다. 그 많던 중국 CRT모니터 업체들도 모두 손을 들었다. 주력인 필름 콘덴서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조금이나마 이익을 내고 있어 당분간 괜찮은 사업이다.
◇노조와의 갈등…큰 깨달음=6∼7년 전에 뉴인텍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저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회사와 하나가 돼서 나간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직원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노조 문제로 고민이 좀 많았다. 주위에선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그거 못 헤쳐나갈 것은 뭐냐?’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전에는 직원들과 별달리 갈등한 적도 없고 해서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다고 장 사장은 떠올렸다.
노조와 갈등하면서 장 사장은 나름의 진리를 얻었다. “사회라는 게 사용자의 일방적인 힘에 의해 이뤄진다면 지금처럼 세계적인 부의 창출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용자와 대립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수준이 지금처럼 한 단계 올라섰고 그런 부의 창출에 의해 그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세상이 발전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차원의 생각을 하게 돼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장 사장은 “(노조가)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기왕 이렇게 됐으니 동행하는 파트너로서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인과 회사는 하나’=장 사장은 개인과 회사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회사가 잘되면 나도 잘되는 것이고 그래서 개인과 회사를 하나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장 사장은 “하나로 생각하면서 멀리 보고, 사업이라는 게 환경에 따라 조금 나빠질 수도 있고 각광받고 좋아질 수도 있을 텐데 꼭 우리가 갖고 있는 목표를 이룬다고 생각하고 정진하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뉴인텍에는 입사한 지 20년이 넘은 직원들이 많다. 올해 25년 재직기념으로 25돈짜리 금 열쇠를 받아간 직원도 있다. 예전엔 금 한 돈에 4만∼5만원했었는데 요즘엔 금값이 올라 부담스럽다면서도 올해 준비한 300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표정이다.
뉴인텍엔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 현장근무부터 시작해 사업본부장을 하는 직원이 두 명 있다. 나중에 독학해서 대학을 졸업하기도 했고 전문대 나와서 20년 근무한 직원들도 있다. “어쨌든 전 ‘뛰어난 학업성적이 있는 사람=뛰어난 회사원’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더 배울 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죠. 회사에 들어와서 한 가지 일에 20년 이상 해왔다고 보면 특별히 박사학위를 못 받았다 뿐이지 우리가 하는 업에 대해 박사라고 생각하는 직원이 상당히 많습니다.” 장 사장은 “뉴인텍이 앞으로도 잘 될 것으로 자신하는 것은 이런 소중한 경험을 많이 가진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결국, 회사라는게 직원들의 집합체 아닙니까. 직원들의 집합체와 제가 한 몸이 돼서 한 방향으로 나간다고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3∼4년 안에는 정말 각광받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뉴인텍의 성장기는 이제부터= 4∼5년 전부터 필름콘덴서 분야에 신 시장이 생겼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가는 커패시터나 요즘 떠오른 태양광 발전 인버터용 커패시터가 그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커패시터를 공동 개발해 내년에 양산하는 자동차에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3∼4년 고생해서 선정됐다고 생각했는데 선정되고 난 다음에 일이 더 많더군요. 개발했던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제품을 양산해야하는 책임감이라고나 할까요. 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 되는 굉장히 큰 산업이고 그런 국가적인 산업에 동참한다는 점이 더욱 긴장하게 만듭니다.”
장 사장은 “현대자동차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대기업의 기법을 배우고 체득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며 “가만 놔두면 2∼3년 걸릴 일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니 2∼3개월에 해결되기도 한다”며 대기업과의 협력에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장 사장은 하반기에 30억원 이상을 양산라인에 투입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커패시터와 태양광 인버터용 커패시터를 양산할 채비를 갖출 계획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태양광 시장이 뉴인텍을 새로운 도약대로 이끌고 있다. 안경 너머 장기수 사장의 눈빛도 덩달아 빛났다.
◆장기수 사장은
장기수 사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는 전교생을 운동장에 앉혀놓고 유세를 해서 당당하게 학생회장에 당선돼 왕성하게 활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생활을 하다가 대학(물리학 전공)에 진학해 2학년 때는 성균관대 보컬 2기인 ‘캐코포니(불협화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극광전기에 입사한 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미국 남가주대학교 경영학 석사와 경영·과학 석사를 받았다. 1988년에 극광전기에 복직했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 뉴인텍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한국무역협회 비상근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올해부터 필름콘덴서연구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문정기자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