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린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LA올림픽의 체조 영웅 ‘리닝’이 새처럼 날아올랐다. 불타는 성화봉을 든 그는 강철 와이어에 몸을 맡긴 채 60m 높이의 주경기장 지붕 안쪽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벽을 따라 펼쳐진 거대한 두루마리를 따라 달려 성화대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지난 2년간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베이징 올림픽 성화 점화식이 전세계인에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5000년 역사를 240분 분량으로 압축한 장이머우 감독(57)의 ‘중화판 초대형 블록버스터’는 막을 내렸다.
“영화 1편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힘들었다’” 8일 개막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밝힌 소감이다.
중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그의 최근작 ‘황후화’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000억원의 예산을 개막식에 투입했다. 참가 인원만 1만 5000명에 달한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올림픽 슬로건과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21세기 초강대국으로의 변신을 꿈꾸는 중국의 ‘야망’을 조화롭게 묘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개막식 총연출로 낙점된 이후 그는 매일 주경기장이 보이는 160억원짜리 펜트하우스에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8일 개막식은 ‘장이머우의 주특기인 빼어난 영상미와 색채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자 ‘문화적 충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외신은 세계인의 화합을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에 어울리지 않게 온통 ‘자화자찬식 중화주의의 결정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장 감독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유독 뜨거운 것은 그가 걸어온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1988년 중국의 매매혼 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그는 ‘홍등’, ‘귀주이야기’ 등에서 중국의 추한 현실을 여과없이 전한 ‘정치적 반항아’로 통했다. 그런 그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부시 미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흥행요소를 두루 갖춘 지상 최대의 쇼를 선보였다. 지난 10년간 그가 거듭한 영화적·정치적 변신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중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또다른 스펙트럼이다.
장이머우 감독은 “폐막식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중요한 초점을 성화를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는가에 맞출 것”이라면서 “매우 기쁜 분위기에서 관중이 유쾌하고 즐거운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유경기자 yu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