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초고층 빌딩과 세계적 수준의 첨단 정보기술(IT)산업을 거느리는 정보통신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제 막 싹을 틔운 우리의 산업 기반을 초토화시켰다. 정치적 격변인 4·19와 5·16도 겪었고 1, 2차 오일쇼크를 견뎌냈으며 1997년 말에는 외환 위기로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위기를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했다.
건국 이후 우리나라는 마땅히 산업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달라졌다. 박정희 정권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 하에서 급격하게 덩치를 키웠다. 박정희 정권의 산업 발전은 1960년대 고도성장기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추진기로 크게 나뉜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 당시 PVC와 정유·자동차 조립 공업이 신규 공업으로 부상했고 2차 계획(1967∼1971년)은 철강과 가전(TV·냉장고·전자부품), 석유화학(합성수지) 등이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했다.
수출 주도형 중화학공업 체제를 갖춘다는 목표로 추진된 3, 4차 계획에 따라 철강과 비철금속공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1년 2.5%에서 1978년 7.1%로 성장했고 중공업의 최종 단계인 기계공업(자동차·조선·전자)은 10.7%에서 20.3%로 신장했다.
1980년대는 환율·금리·유가의 ‘3저 시대’를 만나 전자와 자동차·철강 등 중공업제품의 수출이 폭발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인 반도체시대도 열렸다. 해외 반도체업계가 256KD램을 양산하던 1983년, 삼성전자는 64KD램 개발에 성공한다. 삼성전자는 10년 만인 1992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D램을 개발해 경쟁국을 따돌렸고 지금은 세계 메모리반도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 이후 한국 경제는 기적 같은 발전을 이뤘지만 압축 성장의 후유증으로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성장 탄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기까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랐지만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오는 데에는 12년이나 걸려 미국 10년, 영국 9년, 일본 4년보다 훨씬 길었다.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 주요 선진국들(G8)은 더 멀리 달아나고 있고 중국·브라질·인도·러시아(브릭스) 등 신흥 경제 국가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계 경제를 잠식하며 우리나라의 통상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60년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권상희기자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