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역주행` 하는 이유

(상)법·제도가 가로막고 있다

전기차, `역주행`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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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가 시대를 맞으면서 기름도 아끼고 환경도 보전할 수 있는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과 제도가 전기차의 도로 진입을 가로막는다. 어떻게든 보급을 확대하려는 선진국과 딴판이다. 현행 법과 제도가 전기차 보급을 막으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그 대안은 없는지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우리나라 전기차 산업이 달려도 모자랄 판에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시장을 수년은 앞서간다는 금융기관이 벌써 관련 상품을 만들고, 기술을 가진 제조업체가 의욕적으로 내놓았지만 전기차는 법·제도라는 장애물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법규에 전기차는 마치 외계인과 같은 존재다. 배기량으로 자동차를 규정한 현행 자동차관리법 제3조에 따라 전기차는 자동차에 포함되지 않는다. 도로를 주행할 수도 없는 일종의 ‘물건’인 셈이다. 나아가 정부는 전기차가 기존 자동차의 안전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시, 형식승인을 내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전기차 보급을 요원한 과제로 미뤄 놓았다. 30조에 따르면 자기 인증을 거치지 않은 차량을 운행하면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이를 산 사람도 처벌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발빠르게 움직인다. 이미 닛산·도요타 등 일본 거대 자동차 업체는 가솔린 1600㏄ 차량과 맞먹는 정도의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한 번 충전으로 16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판매를 눈앞에 뒀다. 미국은 미 연방자동차안전규격(Federal Motor Vehicle Safty Standard)에 근거리 전기차(Neighborhood Electronic Vehicle)를 별도로 규정해 전기차 이용을 촉진하고 있다. 또 유럽연합(EU)은 전기차를 사륜자전거(Quardricycle)로 규정, 브레이크, 안전벨트 등 기본 안전장비만 장착하면 도로주행을 허용하도록 했다.

 일본은 한술 더 떴다. 거의 모든 형태의 전기자동차에 시내 주행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차를 제작하고 개조할 수 있도록 관련 법까지 바꾸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원춘근 그린카클린시티 대표는 “저속형 전기자동차의 안전기준을 일반 승용차와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저속형 전기자동차를 아예 만들지도, 타지도 말라는 것과 같은 조치”라며 “현행 법 테두리에서는 우리 전기차산업 발전은 물론이고 대외 경쟁력 제고까지 전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입법부 내에 전기차 보급에 가장 의욕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는 심재철 의원(한나라당)은 현행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올 연말까지 개정할 방침이다. 바뀔 시행규칙의 골자는 △㏄ 단위만 있는 도로교통법상의 차량형식승인에 전기차량을 위한 ㎾ 단위도 병기 △자동차관리법의 안전기준에 시속 70∼80㎞ 이하의 중저속 차량(LSV:Low Speed Vehicle)을 위한 별도 기준 마련 등이다. 하지만 국회 개원도 안 됐고, 전기차에 대한 국회의 관심도 여전히 낮아 입법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13일 자동차안전 기준에 전기자동차 분야를 포함시키기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 배터리나 본체 강판 등 전기차의 안전기준이 기존 완성차에 준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상인 국토해양부 자동차정책과 사무관은 “전기차라고 하더라도 도로주행에서 안전기준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현재 도로에서 주행해도 충분히 안전할 만큼 완전한 전기자동차를 만들기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업계는 별도의 제도를 이용해 전기차를 활성화하려는 유럽, 북미와 대조적이라고 반발했다. 업계는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을 충족할 배터리나 본체 강판을 적용한 전기차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들며, 경제성이 없다”면서 ‘현실성 없는 전기차’를 개발하겠다는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김호성 CT&T 이사는 “슈퍼마켓 배달용으로 전기차를 구매하겠다는 고객 전화를 받았지만 법적 제약 때문에 아직 시판 여부를 정하지 못했다. 스쿠터도 도로주행이 가능한데 전기차는 왜 안 되나”고 되물었다.

  이진호·배일한·윤대원기자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