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로켓 화포를 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온 ‘신기전(감독 김유진)’이 지난 18일 그 실체를 드려냈다.
시나리오를 쓴 이만희 작가가 다른 작품 3∼4개를 쓰는 정도의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칭송하고 제작 기간만 5년 8개월이 걸린 이 작품은 한국 영화 흥행을 이끌 빅 프로젝트로 불렸다. 하지만 정작 공개된 영화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600년 만에 스크린으로 부활한 신기전은 생각보다 왜소했고 관객을 흡입할 충동 기제도 빅 프로젝트라는 이름엔 다소 약했다. 실망의 폭풍 속에 다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5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전쟁 신 정도. 개봉 전부터 영화에 초를 치긴 싫지만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긴 중량감도 없고 배우들의 감정 라인도 어색했다.
명(明) 사신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륙과의 무역에 참여하려던 보부상단 설주(정재영)는 잘못된 정보로 전 재산을 잃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종의 호위무사인 창강(허준호)이 찾아와 돈을 주며 비밀의 여인 홍리(한은정)를 거둬 둘 것을 부탁한다. 그는 상단을 살리기 위해 거래를 수락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조선이 개발 중인 비밀 병기 신기전 개발의 핵심 인물이었다. 설주는 그녀를 돌려보내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신기전의 위력에 매료되고 동료와 함께 신기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 신기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잠재 관객층은 크게 두 부류로 보인다. ‘다모’에서부터 최근 ‘일지매’까지 사극이라면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봐주는 ‘역사 사극 마니아’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등 사극이 가진 현실 유사성에 집중하는 ‘유사 집착형 마니아’가 그것이다. 사극 마나아가 30∼40대 남성 관객에게 넓게 포진하고 있다면 유사 집착형 마니아는 20대 후반 직장 여성으로 대표된다. 성공한 사극이라면 이 두 부류를 모두 잡아야 했다. 얼마 전 끝난 ‘이산’이 그러했고 ‘일지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신기전은 두 부류 중 하나도 잡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사극 마니아가 사극에 열광하는 부분은 바로 선 굵은 스케일이지만 신기전은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오기에 2% 부족해 보인다. 채연석 한국항공우주원 박사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신기전은 너무 왜소하다. 거북선과 같은 위용까진 기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다연발 대포 정도의 위용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극중 등장하는 신기전은 ‘무기’라고 하기보다 ‘중장비’에 가깝다. 전쟁 신도 그렇다. 명나라 10만 대군에 맞선 조선 정예 부대의 대결을 그린 마지막 전투신은 돈은 많이 쓴 것 같지만 디테일은 아주 약하다. 전쟁 신이라면 모름지기 속고 속이는 전략이 묘미지만 수에 밀리는 조선군은 ‘뻥뻥 지르는’ 신기전에만 의존한다. 마치 한국 축구 팀처럼 말이다.
신기전은 ‘유사 집착형 마니아’를 위한 배려도 전혀 없다. 이들이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기자기한 감정선과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 그러나 신기전에선 이를 위한 배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가 너무 거칠다. ‘이제 나에게 어명을 내릴 수 있는 왕은 죽었소’ ‘그 잘못된 신념으로 천년만년 저들의 속국으로 살 것을 모른단 말이냐?’ 등의 사명감 가득한 대사가 속사포처럼 등장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관객에게 설명할 핵심 대사는 옹알이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홍리를 무조건 도와주는 설주나 그를 위해 아무 명분 없이 죽어가는 수하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과 동일화되지 못한 관객들은 2시간 내내 죽고 죽이는 복마전만을 감상할 뿐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