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프로게이머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게임 구단만 12개에 이르며 등록 선수 역시 400여명에 이른다. 외연은 크게 확장됐지만 아직도 프로게이머는 불안하다.
20대 중반을 넘기기 어려운 짧은 선수 생명에 은퇴 후 할 수 있는 일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e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프로게이머의 장기적 전망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고 있는 사례가 있다. 온라인게임 업체 직원으로 변신한 전직 프로게이머다. 게다가 이 전직 프로게이머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지 않은 여성이다. 엠게임에서 온라인게임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이은경(29) 대리가 그 주인공이다.
10년 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던 애호가라면 이은경 대리의 선수 시절 아이디인 ‘베리’는 귀에 익다. 베리는 여성 프로게이머 중 프로토스 최강으로 군림했다. 98년 전북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면서 학교 선배들과 어울리려고 시작한 스타크래프트지만 그녀 특유의 승부근성과 맞아 떨어지며 프로게이머라는 길을 선택했다.
1세대 프로게이머로 이은경 대리는 많은 여성부 리그를 석권했지만 2002년 즈음해서 여성 리그의 인기가 급격히 시들해졌다. 도리 없이 대학에 복학한 후 자연스럽게 전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대리는 “몇 년 동안 게임을 했고 게임도 좋아했기 때문에 게임 회사에 목표로 잡았다”며 “하지만 프로게이머 경력만으론 게임 업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현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리는 2005년 졸업 후 중소 온라인게임 업체 두 곳을 거친 후 작년 말 엠게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온라인게임 업체에서 일하는 전직 게이머들이 대부분 고객과 게임 속에서 만나는 운영팀에서 일하는 데 비해 이 대리는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엠게임의 기대작인 ‘풍림화산’과 ‘영웅’을 맡고 있다.
이 대리는 온라인게임 업체에 취업하려는 프로게이머들에게 분명한 조언을 내놓는다. 이 대리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나 외국어, 상식 등 회사가 원하는 일반적인 소양을 갖춘 상태에서 게임까지 잘 안다면 금상첨화”라고 전제하며 “프로게이머로서 밤새워 연습하듯이 취업 준비를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직장을 잡을 수 있다”고 웃음지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전직 최고의 프로게이머에서 현직 최고의 마케터를 꿈꾸는 그녀의 도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는 열정 때문이다.
장동준기자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