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옆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 ‘세화.’ 이 곳 생산 공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사출 금형’이 한 물 간 후진국 산업이라는 선입관이 여지없이 깨진다.
사출 금형은 플라스틱 수지 등을 녹여서 원하는 제품으로 만드는 공법을 말한다. 흔히 사출 공장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소재를 녹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지독한 냄새로 제조업에서도 한 물 간 분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세화가 프리미엄TV를 위해 새로 건립한 사출 공장은 다르다.
바로 삼성전자가 맞춤형으로 설계해 도입한 ‘특별한’ 사출 금형 장비 때문이다. 독일에서 직수입한 이 장비는 대당 가격이 20억원에 달한다. 삼성이 이를 설계해 가동까지 무려 2년을 투자했다.
세화 공장에는 4대가 가동을 시작했고 1대는 설치 중이다. 이 자동화 장비가 바로 프리미엄TV ‘크리스탈 로즈’를 만든 일등 공신이다. 크리스탈 로즈는 투명한 TV 블랙 테두리(베젤) 내에 있는 장미색이 빛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 크리스털 공예 작품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공법이다. 실제로 크리스탈 로즈 TV는 주변의 빛과 보는 각도에 따라 베젤 색이 변화해 신비감을 준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이를 ‘TOC(Transparent Opaque Color)’로 부른다. 삼성은 유럽의 최고급 승용차에 한정적으로 장착해 사용하는 ‘썬 루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투명과 블랙 칼라를 동시에 이중 사출할 수 있는 이 기술을 TV에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법이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프리미엄TV의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 김상학 상무는 “TOC는 일반 이중사출과는 차원이 다르게 빛으로 설계했다”라며 “가전 제품에 적용하기는 삼성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디자인을 입힌 크리스탈 로즈 TV는 출시 3개월 만에 글로벌 판매 5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대박을 맞은 ‘보르도 650, 750’ 보다 두배 이상 높은 판매 실적이다. 보르도로 불리는 ‘와인잔’ 디자인 신드롬을 크리스탈 로즈가 성공적으로 이어받은 셈이다.
삼성은 TOC 기술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개선한 다음 세대 제품도 연구 개발 중이다. 세화 김태환 사장은 “삼성이 프리미엄TV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측면도 의미가 있지만 3D 분야라는 선입관이 강한 사출 금형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치고 여기에 신기술을 입히면 얼마든지 첨단 분야로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라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